중국인과 한국인의 경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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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라도 경쟁을 없애버리고 나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 가를 철저하게 깨우친 계기가 되었습니다.”

북한을 다녀온 K 사장에게 경영인으로 느낀 소감을 물었더니 들려준 한 마디다.’경쟁이 없는 사회’는 가난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반대로 ‘경쟁이 꽃피는 사회’는 부유함으로 가는 첩경이기도 하다. 이 교훈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여전히 진실을 담고 있다. 물론 그 전제 조건은 인간의 본성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커다란 진화를 이룰 수 없는 존재임을 생각하면 경쟁이야 말로 가장 번영을 향한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수단이자 철학이다.

이웃 나라 중국은 명목상 공산당이란 일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 볼만한 가치가 있다. 현재 중국에는 모두 400여 개의 대학이 있다.

이들 대학은 1등부터 400등까지 철저하게 등수가 매쳐지며, 이들 등수를 누구든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게다 각 성내에서 순위 뿐만 아니라 전공별 순위도 낱낱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 투자가 3분의 1정도 집중되어 있는 산동성에서 제일 명문인 산동대학은 전국에서 26위권에 속해 머물고 있을 정도다. 북경대학의 경우 중국어학, 물리학, 철학, 역사학, 물리학 등은 1위라고 할 수 있지만 반도체 분야에 관한 한 지린(吉林)대학이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종합대학 중 난카이(南開)대학이 5위 정도에 머물고 난징(南京) 대학은 랭킹이 10위도 될까 말까 하였지만 지금은 난징 대학이 2위, 그리고 난카이 대학은 10위도 될까 말까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 마디로 대학 간 경쟁, 학과간 경쟁이 여간 치열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칭다오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W사장은 “면접시에 직원들이 자기가 학과 내에서 몇 등 에 속해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놀랍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고졸 근로자 초임과 부장 초임 사이에 임금 격차는 평균 3.3배에 불과하고 지난 20여 년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대졸 1년차 직원과 10년차 직원 사이에 임금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대해서 평등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 근로자들에게 교육기회라도 주어지면 저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 야단이리고 한다.

왜냐하면 연수 기회를 100퍼센트 활용하면 곧바로 자신의 몸값을 쉽게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똑똑한 직원들은 거의 3년마다 전직하면서 몸값을 몇 배씩 올리는 경우도 많고, 1년 마다 직원들에게 여러 번 임금 조정을 해 주는 기업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보다 중국이 휠씬 자본주의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한 경쟁관이 중요한가? 그것은 한 사회의 생산성과 발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때문이다.

경쟁과 이로 인한 우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발전은 고사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다. 발전하는 사회는 어김없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경쟁의 결과를 랭킹으로 매기고 밝히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랭킹에 따라서 잘 살고 못사는 일이나 더 받고 덜 받는 일이 결정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는 ‘평등’이란 단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있다. 그 평등이란 것도 결과의 평등 쪽으로 말이다. 게다가 근래에는 결과의 평등을 촉진하는 쪽으로 제도가 변질되고 있다. 잘 사는 사람들을 향해서 징벌적인 세금이 신설되면서 사회정의란 이름으로,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아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흥미를 잃고 잠을 자는 교실이 지속 된지 여러 해가 가고 있지만, 교육기회의 균등과 위화감 조성이란 이름으로 평준화는 계속되고 있다.

근래 제도 개혁이란 것을 하나 하나 파악해 가다 보면 ‘정말 큰 일 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근사한 구호를 외치기 이전에 아주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 이렇게 물어 보라. ‘이 정책은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인가, 아닌가’를 말이다.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진실을 알아내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나은 사회를 물려주기를 원한다면, 경쟁지향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른 길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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