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른 만나면 ‘어디감수과’ 인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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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생활 11년 멘도사씨 등 이주여성 5인방, 각자 위치에서 새로운 인생 개척
▲ 왼쪽부터 제주에서 새둥지를 틀고있는 조이스 멘도사, 운스레이 넷, 간치맥, 영티 홍뚜어이, 조옥란씨.

외국인근로자 2563명, 결혼이민자 1609명, 유학생 857명, 결혼이민 자가정 자녀 1290명…. 지난해 1월 기준으로 외국인 7343명이 제주 에 살고 있다. 이들은 이국땅에서 낯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고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며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이란 수식어를 떼고 시나브로 제주인이란 이름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정다감한 이웃의 등장이다. 도민은 오랜 세월 고수해온 단일민족 신화를 깨고 특별한 이웃을 껴안아야할 의무를 안게 됐다. 제주일보는 외국인에서 이웃으로 변신중인 이들의 삶과 역정을 비정기적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붕어빵 먹을래?” “네? 붕어~빵요?” 조선족 출신 결혼이주여성 조옥란씨(35)는 7년 전께 결혼 초반에 겪은 붕어빵 일화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회를 끔찍이 싫어하던 자신에게 형님이 붕어빵을 권하자 화들짝 놀랐다. 생선을 혐오하는 음식취향을 형님도 익히 알던 터라 정색했다. “저 생선 안 먹잖아요.” 그날 붕어빵은 붕어와는 전혀 무관한 일종의 빵이란 사실을 알고 그는 안도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한국생활 적응과정이 술술 딸려 나온다.

 

지난 세밑 제주시다문화가족센터(센터장 김정우)에서 조씨와 필리핀 출신 조이스 멘도사씨(40), 몽골 출신 간치맥씨(32), 캄보디아 출신 운스레이 넷씨(27), 베트남 출신 영티 홍뚜어이씨(26) 등 결혼이주 여성 5명을 만났다. 한국행 경력은 멘도사씨가 11년 최고참이고 나머지는 45년차다. 이국에서 숱한 문화적 차이와 사회적 고행 등을 극복해온 사연이 연방 튀어나왔다.

 

홍뚜어이씨가 낯선 제사부터 꺼냈다. “베트남에선 낮에 제사하는데 제주에선 밤, 그것도 자정에 해요. 음식은 왜 그리 많이 준비하는지 이해 안됐죠.” 그녀는 “베트남에선 형식 안 따지고 평소 먹던 음식을 차려 고인을 기린다”며 “어른들이 밤 12시에 귀신이 와 식사한다고 말해 침 꼴깍 삼키며 기다렸지만 아무 일 없었다”고 회고해 참석자들의 웃음보를 건드렸다.

 

한국사회의 부부관계에서 고부 간 갈등은 빼놓을 수 없는 법. 육아 문화의 다름도 보태졌다.
간치맥씨는 아기 낳고 돌보며 시어머니와 티격태격했던 일을 반추했다. 아기를 1년간 포대기로 꽁꽁 감싼 채 안고 다니는 몽골과 아기를 업고 다니는 한국의 서로 다른 양육방법이 발단이었다. 간씨가 아기를 싸자 시어머니는 숨을 못 쉬겠다며 나무라더니 포대기를 푼 채 업고 다녀 감정대립이 발생했다. “내가 시어머니보다 어리고 삶의 방식이 달라 생긴 문제니까 일단 이해하자”며 스스로 달랬던 간씨는, 이젠 건강한 고부지간으로 발전했다고 전했다.

 

양성 불평등 요소도 도마에 올랐다. 홍뚜어이씨와 간씨는 “한국남성은 가사에 소홀하다”며 “아내가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육아까지 도맡는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간혹 불만을 표출하면 시어머니가 밖에서 힘든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다고 편향적으로 꾸짖었다며 가부장적인 경향이 심하다고 둘은 덧붙였다. 또 이들은 주민들에게서도 ‘못 사는 나라 출신’이란 따가운 시선과 선입견에 시달리고 차별과 조롱까지 경험했지만 이제는 많이 개선됐다고 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제주사회에 한창 적응 중이었다. 아니, 이미 도민이자 정겨운 이웃으로 살고 있었다. 홍뚜어이씨는 자신이 사는 삼양은 해수욕장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한 후 제주사람은 딱딱하고 야박하다고 들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전혀 안 그렇고 주민끼리 우애가 도탑고 인정 넘친다며 자신도 할머니들을 만나면 “어디 감수과(가세요)?”라고 인사한다며 미소 지었다. 간치맥씨는 “무싱거(뭐)” “있수과(있어요)? 없수과(없어요)?” “재개 옵서(빨리 오세요)” 등 일상어 사투리표현을 열거한 후 스스로 판단해도 제주인이 다됐다고 강조했다.

 

조옥란씨도 제주시민속오일시장 할머니장터를 애용한다고 언급, “‘이거 얼마 마씨(얼마입니까)?’ 물으면 ‘하영 줘마씨(많이 줍니다)’”라며 맹물에 된장 풀어 만드는 ‘제주냉국’이 가장 맛있다고 꼽았다.

 

활달한 홍뚜어이씨는 뭐든 억척스레 배웠다며 음식도 청국장을 포함 다 잘 먹는다고 너스레 떨었다. 지난해 8월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 10월 제주대 한국어말하기대회 대상을 수상했던 그녀 다. 간치맥씨의 사촌동생, 홍뚜어이씨 언니도 결혼이주여성이다.

 

이주여성들의 꿈이 당차다. 제주이주민센터 통역사로 일하며 산업정보대 복지행정학과 1년에 재학 중인 간치맥씨는 약 10년 목표기간을 설정, 몽골과 한국의 문화교류에 헌신하고 있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제주대 통역대학원생인 조옥란씨는 국제회의 동시통역사가 돼 중국과 한국의 상호이해와 소통에 가교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베트남어 통역사와 학교 다문화강사로 일하는 모습은 홍뚜어이씨의 미래상이다. 손맛을 타고난 운스레이 넷씨는 캄보디아 음식점을 운영하는 장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제주사회를 뚜벅뚜벅 개척 중이다. 그렇다. 결혼이주여성들의 다문화가정은 한국사회의 편협한 이해심과 포용력을 확장하고, 경직되고 굴절된 공동체 구성 논리의 모순을 깨트리며 다정다감한 이웃으로 정착하고 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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