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홋카이도 소수 민족 아이누족 현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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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우리에게 북해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북쪽 지방 특유의 기후와 풍토를 통해 원시 그대로의 자연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이곳에는 원주민이면서도 일본의 동화정책에 의해 민족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는 소수 민족인 아이누족이 있다.

이들에 대한 현지 취재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생활상, 멸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살펴본다.

▲아이누족의 역사
아이누란 ‘인간’을 말한다.
아이누족은 까무잡잡한 피부색과 짙은 눈썹, 그리고 동그란 눈과 많은 체모를 가진 종족이다.
이들이 일본에 들어와 산 것은 기원전 5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아이누족의 불행은 비아이누족인 와징(和人)과의 대립에서 시작된다.
1400년대 중엽부터 와징세력이 홋카이도에서 강해지면서 아이누족에 대한 억압이 심해진다.

와징(특히 사무라이)과의 여러 차례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아이누족은 와징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1869년부터 본격적인 북방 개발을 시작한 메이지 정부는 아이누의 생활습관을 전면 금지, ‘일본인’의 생활습관을 강요한다.

특히 1899년에 제정된 ‘북해도구토인보호법’은 아이누족에게 일본인으로서의 위치를 부여하고 와징과의 ‘구별’을 명확히 했다.
메이지 후반에는 와징의 이주가 증대하면서 아이누족에 대한 억압.착취 대신 ‘차별’이 생겼고 그것은 현재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아이누족의 생활 모습을 보려면 삿포로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진 시라오이의 아이누민속촌을 찾아가면 된다.
정문에 들어서면 높이 16m의 거대한 아이누족 추장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이누족 전통 가옥과 나무로 만들어진 식량 보관 창고, 아이누족 민속 박물관 등이 있다.
옛 아이누족 민속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안내를 맡고 있으며 광장에선 고유의 민속춤이 공연된다.

최근 홋카이도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의 인구는 2만8000여 명(홋카이도 전체 인구는 700여 만명)이며 일본 전체적으로는 3만여 명이 있다.

▲아이누족의 의식주
아이누족의 의복에는 원래 바다가마우지, 에토피리카(바다참새과의 해조) 등의 깃털이 달린 가죽으로 만들어진 새털옷과 곰.사슴.여우.개.바다표범 등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짐승가죽옷, 연어.숭어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물고기 가죽옷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의복은 나무껍질 옷(수피의)이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아프시직(織)인데, 이것은 나무의 내피에서 얻은 섬유로 짜인 의복이다.
또 풀로 만든 옷으로 쐐기풀의 섬유로 짠 것은 색이 하얘 레타라페(하얀 것)라고 불린다.
이것은 사할린의 아이누족이 많이 이용한 의복이다.

아이누족의 식생활은 독특하다.
보통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으며 주로 고기를 삶아 국으로 먹는다.

곰이나 사슴의 내장을 가늘게 썰어 날 것으로 즐겨 먹는다. 연어는 얼린 그대로 먹거나 훈제를 한 후 먹는다.
일본인이 농경민족인 데 비해 아이누족은 수렵민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전형적인 아이누족 가옥은 한 칸으로 서쪽에 헛간을 겸한 입구를 가지고 있다.

창은 세 개가 있는데 그 중 들어가서 정면(동쪽)에 있는 창은 로룸프얄이라고 불리는 신들이 출입하는 창, 또는 의례시에 이용하는 여러 용구를 내고 들이는 창으로 신성시되고 결코 엿봐선 안 된다.

북쪽에는 창문이 없으며 서쪽에 2개의 작은 창문을 연다.
옥내의 입구 가까이에는 이로리(실내 바닥을 파서 만든 일종의 난방장치)가 설치돼 있다.

▲아이누족의 현실

아이누족은 메이지 시대 이래 100여 년간의 강력한 동화정책에 의해 오랜 전통을 가지고 배양해 온 문화 풍토인 아이누어를 빼앗기고 말았다.

오늘날 아이누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소수의 노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다.
모어로 말할 수 없는 아이누가 있어도 그 특징적인 용모에 의해 식별이 쉽기 때문에 오늘날도 역시 취직과 결혼 등 사회적인 차별이 뿌리깊게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차별에 의해 아이누의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가정이 많다. 생활 보호의 수급률은 전국 평균의 6배에 달하고 있다.

▲아이누족의 위기극복 노력

1946년에 전도아이누대회가 개최되고 ‘교육의 고도화’와 ‘복리후생시설의 협동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 북해도아이누협회’가 설립됐으며 1961년 이 단체가 ‘북해도우타리협회’로 개칭되면서 아이누족에 관한 제반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누어의 부흥, 전통무용, 각종 의례 등의 독자적 문화의 전승.보호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또 전도 각지에서 아이누어 교실이 열림과 동시에 고식무용보존회가 조직돼 이요만테, 칩산케라고 하는 의례가 부활.실시되고 있다.

아이누민속촌에서 만난 아이누족들은 “과거에는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보존하고 전승할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제는 젊은 아이누들을 비롯해 와징들 사이에서도 아이누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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