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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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눈이 소오복이 왔네/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추워 한다고/덮어주는 이불인가봐/그러기에/추운 겨울에만 나리지.”(윤동주의 ‘눈’ 전문)

31일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사이 밤새 폭설이 온 섬에 내렸다. 강풍까지 동반한 날씨는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이며 산간에는 14~20㎝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오랜만에 들판위로, 도로위로, 지붕위로 가득히 쌓인 눈을 보며 잊혀졌던 시 한 두편을 생각하게 된다. ‘서시’의 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에게서도 내리는 눈은 이처럼 포근하다.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중략)…/내홀로 밤깊어 뜰에 내리면/머언 곳에 女人의 옷벗는 소리”

김광균(1914~1993)의 ‘설야(雪夜)’의 일부다. 그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의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만큼이나 고교시절 국어시간을 설레게 했던 기억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갑자기 많이 내리는 눈이나, 고요히 내리는 눈은 이처럼 시인들의 서정을 자극하며 시대를 뛰어 넘는 명작들을 남겼다.

▲1970년대초 겨울 조문차 충청도의 문의(文義)마을 찾은 시인 고은은 “모든 것은 낮아서/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나면 우리 모두 다 덮이겠느냐.”고 노래했다.

겨울 문의에서 시인은 내리는 눈을 보며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사실과 삶의 법칙에 따라 사람들은 성장하고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김주영 소설 ‘홍어’의 박꽃같이 하얀 눈은 흐트러짐 없이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적막한 산골마을을 따스하게 감싸안는다.

▲그러나 이처럼 폭설은 그저 흰색의 경이로움과 고요만으로 우리곁에 있는 것은 아니다. 긴긴 겨울밤을 뒤척이며 눈이 쌓인 나무들도 간간히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부러진다. 이른바 ‘설해목(雪害木)’이다.

“겨울철이면 산의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람들이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히면 꺾이게 된다. 가지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법정스님의 ‘설해목’ 중에서)

바닷가의 조약돌을 둥글게 만든 것은 무쇠로 만든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모처럼 쌓인 폭설을 보며 깨닫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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