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의 ‘오사카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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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일본 경제의 중심도시, 오사카의 상권을 둘러보고 왔다. 흔히 상인국가로 불리는 일본에서 상인의 역사는 오사카에서 시작한다.

오사카는 586년에 창업한 세계 최고(最古)기업인 건축회사 공고구미, 600년 역사의 화과자점 스루가야, 500년 전통의 이불가게 니시카와, 400년 역사의 히야제약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점포나 기업이 500개가 넘는다.

이렇게 오랜 전통을 쌓은 명망 있는 점포를 일본에서는 시니세(老?)라고 부른다. 선조 대부터 가업을 이어왔고, 오랫동안 고객으로부터 신용과 사랑을 받아온 무형자산이 있는 점포를 말한다.

오사카 상인의 상징은 노렌(暖簾)이다. 노렌은 식당, 소매점, 백화점이나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입구마다 치렁치렁 걸려 있다. 노렌은 그 점포나 기업의 문양이 들어간 무명 커튼에 불과하지만, 여기엔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노렌은 바로 그 점포의 창업정신, 전통과 신용, 자부심과 명예를 상징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는 것이 오사카의 상인정신이다.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렌을 내린다는 것은 오사카 상인들에겐 곧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면 오사카 상인이 이렇게 융성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상인에 대해 존경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오사카에선 상사농공(商士農工)의 순으로 상인이 무사 위에 있었다. “상인이 화를 내면 천하의 제후도 놀란다”는 말은 오사카 상인을 두고 한 말이다. 일본의 쇼군들도 상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정치를 제대로 해나갈 수 없었다.

오사카가 본격적인 상인 도시가 된 것은 1590년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역대 최대의 성을 지었고, 천황이 있는 교토를 능가하는 경제권을 이곳에 형성하고자 했다. 그는 후시미?오우미?사카이?히라노 등 일본의 4대 상인을 오사카로 모았고, 쌀?생선?야채시장 등 3대 시장을 통해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만들었다.

쌀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한 센바 상인은 “돈을 남기는 것은 하(下), 가게를 남기는 것은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은 상(上)”이라 하여 상인정신을 키워나갔다. 고객이 있는 한 사업은 영원하므로 눈앞에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사카 상인정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 중 회덕당(懷德堂)과 석문심학(石門心學)이 있다. 1724년에 5명의 상인이 세운 ‘장사꾼을 위한 장사꾼학교’가 회덕당인데, 오사카대학의 회덕당센터로 남아있다. 상인출신인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의 사상을 종합한 석문심학은 일본인의 상도를 최초로 체계화한 것으로 상인들의 바이블로 자리잡고 있다.

오사카 상인의 이면에는 뛰어난 원가계산, 고객중심의 서비스 정신, 근검절약, 꾸준한 공부 등과 함께 인내심과 올바른 상도덕, 금전관이 더해지면서 천하제일의 상인이 되었다.

오늘날 일본 경제를 주도하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기업은 세계 5대 전자회사 마쓰시타 그룹, 일본 맥주시장 점유율 1위인 아사히맥주, 일본산 위스키의 원조 산토리 위스키, 세계 최초의 라면 개발회사 닛신식품, 세계 2위의 비디오 게임업체인 게임 왕국 닌텐도, 고품격 백화점의 대명사 다카시마야 백화점 등이 있다.

오사카 지방의 경제력은 캐나다 전체 규모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러한 막강한 경제력을 갖게 된 데는 무엇보다 오사카 상인정신이 뒷받침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문제도 결국은 정신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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