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길의 혁명 시작되다-한라산 횡단도로(5.16도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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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포장 지시’
김한준 지방과장 사업 위한 사전조사 등 전담
일제강점기 도로 흔적 성판악까지만 겨우 존재
서귀포쪽으로는 밀림지대…신비한 경관 간직
▲ 김영관 제주도지사(사진 가운데)는 한라산 황단도로 개설·포장사업이 착수된 이후 김한준 지방과장, 홍성림 건설과장과 함께 공사현장을 수시로 찾아 작업을 진두지휘 했다. <제주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제주를 방문하고 돌아간 뒤 9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제주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박 의장이 한라산 횡단도로의 개설포장사업에 대한 주위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뜻을 인정하고 사업 추진을 수행한 장관들에게 지시함에 따라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사업은 그대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도 ‘되면 좋지만 꼭 그 일을 해야겠느냐’고 사업추진이 되지 않아 내가 다칠까봐 걱정 어린 말로 내게 사업추진을 만류하기도 했다.

 

또 도청의 참모들도 ‘일주도로 포장을 먼저 해야 하는데 한라산 횡단도로포장을 먼저 하게 되면 일주도로 포장이 오히려 더 늦어질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사실 도청의 참모들의 의견 모두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것으로 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제주개발을 위해선 역발상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봤고 발상의 전환을 이루는 지점이 바로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이었다.

 

내가 보기에 일주도로 포장은 언제든지 추진이 가능한 사업이었지만 일주도로 포장을 먼저하게 되면 한라산 횡단도로 사업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는 횡단도로가 먼저 포장되면 일주도로는 자동적으로 빨리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사실이 그랬다.

 

한라산 횡단도로 포장 개통은 제주도 개발과 발전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데 비상시 혁명정부에서 추진하지 않으면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나는 제주도지사로 재임하면서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사업은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을 했고 도청 참모들에게도 도정 최대의 역점사업으로 제시했고 결국 박 의장의 결심을 받아냈다.

 

나는 당장 현재 제주일보 김대성 회장의 선친인 김한준 지방과장에게 한라산 횡단도로 사업을 위한 사전 조사를 한 다음 내게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김 과장은 내게 1932년 일제 강점기 당시 횡단도로가 개설됐으나 그 이후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아 길이 훼손돼 당장 포장이 어렵다는 보고를 했다.

 

그래서 나는 김 과장, 홍성림 건설과장과 함께 지프차를 타고 직접 현지답사에 나섰다.

 

내가 보기에 제주도민중에도 실제로 걸어서 한라산 횡단도로를 가본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제주시에서 견월악까지 그런대로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의 흔적이 나 있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차가 다닐 수 없어 걸어서 겨우 길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 나가야 했다.

 

성판악까지는 어렴풋하게라도 도로의 형태가 남아 있어 길을 잃지는 않았지만 서귀포 방향으로 내려가면서부터는 길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예전에 만들었던 길은 밀림지대로 변모해 길을 잃기 일쑤였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면 도로를 새로 정비하고 포장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현지 답사였다.

 

실제로 한라산 횡단도로 흔적을 따라 한라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펼쳐진 경치는 아름다움을 넘어서 신비롭기까지 했다.

 

우리 일행은 이 도로가 포장돼 개통되면 관광도로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또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포장을 위해 도면상으로 볼때와 실제 답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천양지차였다.

 

과연 이 도로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되면서도 이 도로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제주관광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하게 됐다.

 

나와 답사를 동행한 김한준·홍성림 과장은 내게 ‘이게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복적으로 물으면서 ‘만약 이뤄낼 수 있다면 대단한 일입니다’라며 ‘꼭 힘 합쳐 이뤄냈으면 좋겠습니다’고 내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과 포장을 위한 예산과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절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을 국비로 충당해야 했고 그 예산규모도 수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면서 열악한 정부의 살림살이를 감안하면 지루한 줄다리기는 충분히 예상되는 사업이기도 했다.

 

당시 정부의 지방예산 배정은 인구와 면적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제주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예산배정을 받아내기가 어려운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한신 내무부장관은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약속했던 제주시내 도로포장사업비를 내려 보내줬고 제주항에서 제주비행장에 이르는 도로에 첫 포장사업을 하게 됐다.

 

도청 앞 공설운동장에서 수 천 명의 도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도로포장 기공식이 열린 그 날은 박 의장이 제주를 왔다 간지 10일째 되는 9월 21일이었다.

 

나는 이 때가 바로 제주개발에 있어서 길의 혁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날이자 제주도 도로개발의 역사가 처음 열린 날로 기억한다.

 

이때 포장된 도로는 일주도로 제주시 서쪽구간이었고 그해가 다 가기전에 완공돼 도민들은 처음으로 포장된 도로를 구경하게 됐다.

 

이 공사는 육지에 있던 삼부토건이 맡았는데 이후 한라산 횡단도로 개설 포장도 이때의 도로포장 노하우를 얻은 삼부토건이 맡게 된다.

 

그런데 제주시민들은 당시 6-7m의 포장도로의 폭이 인구밀도와 도시규모면에서 볼때 너무 넓다는 불만을 제기했고 일부 도심지 주민들이 도로 폭을 줄여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민원이었으나 그때 시민들에게는 도로가 너무 넓다고 여겼던 셈이다.

 

제주개발을 위해 예산과 장비를 중앙정부와 절충한 결과 처음에 장비운송 문제를 거론하며 제주도 도로포장에 난색을 나타냈던 내무부가 도로포장에 필요한 중장비를 임대해주기로 했다.

 

나는 정부로부터 임대받은 중장비들을 당시 이성호 5대 해군참모총장에게 부탁해 해군 LST함정으로 인천항에서 제주도로 운송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성호 총장은 내가 제주도지사로 임명됐지만 군에 남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당시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도지사로 내려가라고 하면서 제주도지사로부임하면 무엇이든지 돕겠다고 내게 약속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총장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당시 얘기를 하곤 하는데 당시 해군이 제주도 개발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10월2일 해군 LST 809호함정이 도로포장용 중장비인 불도저와 콤부랏샤, 롤러와 제주도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하와이에서 들여온 지하수 심정굴착기, 관급자재인 아스팔트 1700드럼을 가득 싣고 제주항에 입항하자 제주시민들이 대거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운송된 장비들을 구경하기 위해 시민들이 구름같이 몰려온 것이다.

 

제주도에 중장비를 실어온 LST809함정은 한국함대소속으로 주로 상륙작전에 이용되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함정이었는데 2차대전과 한국전쟁때도 활용됐던 유명한 함정이다.

 

또 제주도로 운송되지 못해 서울에 있던 제주도지사용 관용차인 세단차도 해군 함정을 통해 제주도로 운송해왔다.

 

중앙정부가 이전에 조금만 제주도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장비수송도 어려운 문제 아니었다. 정부의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
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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