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길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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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을 때 결혼하겠다고 버티다가, 가까스로 얻은 직장을 밑천으로 결혼하여, 멋모르고 자식 낳아 기르다보니, 어느덧 흰머리도 생기고 눈까지도 침침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때때로 ‘고집이 센 것 같다’는 주위의 말을 듣고 고집을 꺾어 놓겠다고 매를 든 적도 있고, 중요한 시기에 공부는 않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고 있다고 언성을 높여 나무라기도 하면서 교육하여 왔지만, 이제는 힘도 없고 이미 그럴 필요도 없이 훌쩍 자라버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월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나마 자식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열심히 교육해왔는데 점차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 슬프다.

내가 지금 나의 자식을 바라보며 마음조리는 것처럼, 나의 부모님도 나를 기르면서 수차례 마음을 조리셨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이제는 늙고 병들어 어느덧 자식들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세상의 자식들은 저마다 흩어져 오로지 제 자식들과만 잘 살아보겠다고 일년 내내 소식 한 번 없다가, 일년이면 겨우 두 세 차례 추석과 설날 등에,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고향에 들려 형식적으로 부모님을 뵙고는 바쁘다고 곧 떠나버린다. 그래도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몰려드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곧바로 떠나버린다 하여도, 세상에는 부모를 버리는 자식도 많으니, 그나마 일년에 한 두 번이라도 찾아오는 자식이 고맙다고 생각하신다.

늙고 병들어 힘이 없으면 슬프다. 자식들이 부모를 대하는 것도 그러할진데, 남들이 무슨 정이 있어서 은혜를 잊지 않으리……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올라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내려가는 것이 올라가는 것보다 어렵다. 등산이 그렇고, 명성을 얻는 것이 그렇고, 지위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것이 그렇다.

오르막만 있는 인생은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내리막길을 가야한다. 정상에 올라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그 성공에 취하여 허우적대다보면 어느덧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자리에 서서 화려했던 지난날을 돌아보아도 소용이 없다. 내가 남에게 잘해준 것은 없다. 단지 못해준 것만이 남아 날 원망한다. 차라리 그 자리에 나서지 말았을 것을, 명예가 좋아서 권력이 좋아서 그 자리에 나섰으니, 이제 원망만이 날 기다린다. 그나마 원망을 최소화하려면 어려서 도덕책에서 배운 것과 같이 실천했어야했다.

정을 똑 같이 준다고 하여도 어느 자식인가는 부모를 원망하듯, 여러 가지 이유로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도, 그것이 원칙에 맞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할 것이 많다. 좀 더 빨리 그것을 알았더라면 차라리 도덕책에서 배운대로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제 책대로 하지 않아, 후배의 처분만을 기다려야하니, 이 놈의 신세 불쌍해서 어이하리……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은 그 자식에게 똑같이 당할 것이며, 은혜를 모르고 까부는 후배는 그 후배의 후배에게 똑 같이 당할 것이니, 효도하면 효자를 기를 것이고, 은혜를 갚으면 은혜를 아는 후배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더 이상 늦기 전에 내려가는 길을 준비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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