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전리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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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이 되었다. 일단 축하받을만한 일이지만 얼떨떨한 감도 없지 않다. 1980년대 후반 학계에서 평화의 섬 구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무모한 발상이라고 했었다. 세상사 참으로 오래 살고 볼일이다.

그러나 우리끼리 얘기하자면 스스로 평화의 섬임을 선포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세계적으로도 중앙정부가 나서서 평화의 섬 혹은 평화의 도시로 지정한 경우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이 말은 곧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 받았지만 국제적으로는 큰 의미를 부여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제주도로서는 국가적인 지지와 지원을 토대로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적 여건을 획득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평화의 섬 지정은 전리품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요 멍에라고 할 수 있다. 평화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서 지금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어디선가 ‘범죄 없는 마을’이라고 새겨진 표석(標石)을 본적이 있다. 그때, 지금까지는 범죄가 없었는데 앞으로 발생하면 저 표석을 떼어야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그 표석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고 진행형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평화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없이는 평화의 섬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 동네가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표석을 내세운 것처럼 제주도 역시 ‘세계평화의 섬’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웠다. 공통점이라면 범죄 없는 마을표석이 그 동네를 먹여살려주지 않듯 평화의 섬 브랜드가 제주도 경제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표석을 붙이고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명예요, 자부심 때문이다.

이번 정부의 평화의 섬 지정은 그간 온 제주도민들의 염원에 비하면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가적으로 동뷱아평화연구소와 평화관련 국제기구를 유치하겠다는 기본적인 수준의 발표 외에는 구체적 의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이다. 일각에서는 부산시에 빼앗긴 APEC 정상회의에 대한 민심 무마용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일고 있다.

새삼스럽게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것을 두고 정치적인 의미와 연관시키고 싶은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번에도 지정 따로 지원 따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중앙정부의 이중성에 대한 도민들의 피해의식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 지정만 해도 출발은 요란했지만 본격적인 지원은 고사하고 경제자유구역 등 유사한 후속 제도를 지정하면서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출범하자마자 만신창이가 되지 않았는가.

제주도는 다른 광역시도와는 다른 작은 섬이다. 지역세가 약한 제주도로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성공하기 어렵다. 이른바 중앙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는 ‘지역형평성’이라는 잣대가 제주를 더 약체로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적으로 제주도의 가치를 충분히 활용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지역형평성’은 지역세가 아닌 지역의 가치와 발전가능성에 기초를 두었으면 한다. 중앙정부는 이번 세계평화의 섬 지정만큼은 이와 같은 선상에서 수용하고 추진하길 바란다. 언제까지 제주도를 지역형평성이라는 잣대로 재단할 것인가. 제주도는 한국의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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