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부도덕
무능과 부도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무능과 부도덕은 공히 사회의 안녕을 저해한다. 이는 모두 부정적인 것이지만 선후가 존재한다. 사회가 발전을 지향할 경우, 무능은 부도덕에 비하여 더 나쁘게 인식된다. 한편 정체된 사회의 경우, 부도덕이 무능에 비하여 더 나쁘게 인식된다.

작은 농촌사회를 생각해 보자. 이 마을에서 도둑질을 하거나 깡패질을 일삼는 사람은 사회의 안녕을 크게 저해한다. 또 잘못된 말을 옮겨서 구성원의 단결을 저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부도덕이며 응징의 대상이 된다. 반면에 힘이 세지 않아서 농사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응징의 대상이 아니다. 힘이 없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힘이 없는 사람도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농번기에 한명의 일손도 부족한 상황에서는 밥이라도 지어서 나를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산업화된 도시생활에서는 생활의 권역과 노동의 권역은 분리된다. 노동의 장에서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일을 한다. 또 이 집단은 농경사회에 비해 능력중심으로 운영된다. 능력이 탁월하면 나이가 젊어도 빨리 승진할 수 있으며 더 많은 급여를 누릴 수도 있다. 반면에 능력이 부족하면 온갖 설움을 감내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퇴직이 강요되기도 한다. 불쌍하다고 능력이 없는 부하직원을 붙여놓으면 자기가 무능력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후배를 잘라내어야 할 수도 있다. 가끔 한번씩 도움을 받기 위해서 무능한 사람을 조직에 붙여놓기 보다는 그때그때 임시직을 구하면 된다. 월급을 주어가며 무능한 사람을 붙여놓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무능이 바로 최악의 덕목이 된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농경사회의 전통과 산업사회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직장생활도 철저한 능력중심제로 운영되고 있지는 않다. 여기에도 학연과 지연이라는 전통의 끈(!)이 남아 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문화는 거부하기 어렵게 침투되고 있다. 이런 사회는 정이 메말라 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직장이란 오로지 일 때문에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교육받은 권역도 다르고 현재 생활하고 있는 권역도 다르다. 학력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다. 이렇게 다원적인 사람들이 오로지 일 때문에 모였는데 일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이런 사회에서 무능한 사람이 붙어먹으려 하는 것이 오히려 부도덕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도덕의 개념도 바뀌어 가고 있다.

개인이 추구할 덕목과 사회가 추구할 덕목은 다르다. 개인은 삶에 만족하는 태도를 지향하고 성장이나 발전보다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따뜻한 정이 흐르는 사회를 지향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같은 덕목을 추구하는 것은 곤란하다. 세계 3대 빈국 중 하나이고 인구 밀도 세계 1위, 문맹률 86%인 방글라데시가 “국민 행복도 조사” 결과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뭔가 좀 우습다.

개인은 행복을 추구하더라도 사회는 발전을 추구해야 할 것 같다. 무능을 용납하면 사회가 무능해 진다. 살다보면 이러한 문화적인 변화를 혼동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당신이 이런 것을 잘 하니까 당신이 하시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좀 뻔뻔해 보인다. 월급을 같이 받는데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해서 일을 더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가족경영의 분위기이다. 그렇다고 가족과 같이 대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일만 더 시키려는 태도가 나는 부도덕하다고 느낀다.

제주사회는 아직까지 농수산업의 1차 산업이 많이 있지만 과거의 농경사회와 같은 사회는 아니다. 농수산업도 자급자족의 목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차원에서 수행되고 있다. 또 관광업 등의 3차 산업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아직까지 농경사회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다. 나는 이것이 제주의 발전을 가장 저해하는 요소라고 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