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물의 혁명①
15.물의 혁명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제주도의 가장 심각한‘도민 식수난’해결 위해 고심”
김영관 도지사, 도청 공무원 지하수 개발 조사차 하와이로 파견
1961년, 애월읍 수산리에서 제1호 ‘지하수 관정 기공식’개최
▲ 1961년 10월 10일 북제주군 애월읍 수산리에서 하와이에서 공수된 심정굴착기를 이용해 끌어올린 지하수를 지역주민들이 마시고 있다. <제주일보 자료사진>

■ 물 문제는 제주도민의 인권문제
내가 제주도지사에 부임한 이후 가장 심각하게 생각한 문제는 물 문제였다.

 

당시 제주도에는 상수도가 얼마 보급되지 않아 해안가 마을에서는 바닷가에서 나오는 용출수를 길어다 먹고 있었고 중산간 마을에서는 빗물인 봉천수를 받아 식수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아낙네들은 식수를 얻으려고 물 허벅을 지고 물을 길러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고생을 해야 했다.

 

내 고향 강원도는 가는 곳 마다 물이 나오고 그랬는데 제주도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나는 물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볼 때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인데 이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는 제주도민들을 볼 때 물 문제는 바로 인권의 문제였다.

 

문명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제주도민이 마땅히 누려야할 문화적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소외된 것은 정부당국의 문제이기도 했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도 제주도의 가장 시급한 문제가 도로문제와 물 문제임을 강조하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보고한 적이 있다.

 

나는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공급해야 할 것을 생각했으나 이는 장기적인 문제였고 당장 해결해야할 수단을 찾아내야 했다.

 

물 문제 해결방법을 찾던 중 내가 전에 해군에 근무할 당시 갔었던 미국의 섬 하와이가 떠올랐다.

 

하와이 역시 제주도와 같은 화산섬인데도 물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와이 총영사에게 하와이에서는 어떻게 물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

 

마침 당시 하와이 총영사는 나와 해사 동기였던 해군제독출신의 김세원이었다.

 

김 총영사는 내게 지하수를 이용해 식수를 해결하고 있고 지하수 개발에 필요한 심정굴착기도 하와이에서 구입할 수 있고 지하수개발에 필요한 기술도 하와이 현지에서 습득할 수 있다고 알려왔다.

 

나는 바로 제주도 기술직 공무원들을 하와이로 출장을 보냈다.

 

나는 그들에게 하와이 현지 물 해결방법을 조사해올 것을 지시하면서 제주도의 물 문제 해결은 당신들에게 달려있다고 사명감을 불어넣었다.

■ 심각했던 제주도의 물 상황
내가 도지사에 부임했을 당시 제주도의 상수도 시설은 용천수를 파이프를 통해 흘러보내는 식이었다.

 

그나마 상수도는 서귀포와 추자도 제주시 금산수원지 밖에 없었고 여과시설 없이 저수지에서 소독만 하고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수도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은 서귀포와 추자도 제주시 일부 중문 등 4개 지역 뿐 이었고 애월 한림 모슬포는 간이상수도시설을 위한 수원조사를 하던 중 이었다.

 

또 물을 상수도로 통해 공급받던 지역도 하루 물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아 제한급수를 하거나 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많아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하와이로 출장 간 제주도 공무원 기술진들이 그곳의 식수해결방법을 어떻게 습득해오느냐에 따라 제주도 물의 혁명 성패가 가름되는 중요한 갈림길이었던 것이다.

 

당시 육지에서는 대부분 강과 계곡의 물을 저수지에 담아 식수로 사용했었지만 제주도의 경우 화산섬인 관계로 물을 저장할 마땅한 수단과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선진국인 미국의 하와이 상황은 제주도의 좋은 교본이 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해군출신이어서 하와이를 가본 적이 있었고 하와이 총영사가 바로 나의 해군사관학교 동기였던 것도 제주도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여건이었다.

 

김세원 총영사는 내게 사람만 보내면 무엇이든지 도와주겠다고 흔쾌히 약속했고 때마침 그의 적절한 도움은 제주도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전국 최초로 심정굴착 통한 지하수개발 성공하다

 

미국 하와이에 물 문제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출장 갔던 제주도청의 기술직 공무원들이 미국의 기술진과 함께 제주도로 돌아온 것은 9월 초순 이었다.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미국의 기술진과 함께 제주도의 수맥을 찾기 시작했고 한 달여 만에 수맥을 찾는데 성공했다.

 

1961년 10월10일 마침내 애월읍 수산리에서 하와이에서 공수된 심정굴착기를 이용해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관정 굴착 기공식을 가졌다.

 

그 지역 주민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진 기공식 당시 현장은 북제주군 애월읍 수산리 1057번지의 강희봉씨(당시 71세) 소유의 땅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제주도 지하수 개발 성공의 역사가 처음으로 기록됐다.

 

이는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으로 심정 굴착을 통한 지하수개발 성공사례이기도 했다.

 

비록 미국의 기술진의 도움으로 지하수 개발이 성공한 것이지만 이에 참여한 도내 기술진의 역할도 역시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

 

나는 이렇게 빨리 지하수 개발에 성공한 것은 제주도 공무원들의 높은 열정과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지하수 개발 제1호인 애월읍 수산리 심정굴착현장에서 모터를 돌려 파이프를 통해 맑고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나오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지역 주민들의 감탄과 환호소리를 잊을 수 없다.

 

제주도에서 물의 혁명이 시작된 이 현장을 지켜본 나는 물론 지역주민들의 얼굴에는 깜짝 놀라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두가 ‘아니 여기서 물이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라는 놀라움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 고생스럽게 물을 길어다 먹거나 빗물을 받아서 생활을 해오던 도민들의 눈앞에서 수도꼭지를 틀자 맑고 깨끗한 물이 시원하게 나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애월읍 수산리 지하수 개발에 성공하자 현장에서 통수식을 개최하고 마을 주민들 중 가장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어르신들을 초청해 먼저 수도를 틀어 받은 물을 마시게 배려했다.

 

그 당시 그 현장에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에는 기쁨에 찬 표정이 가득했고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이 내게도 진하게 전해졌다.

 

나 역시 지하수 개발 성공의 기쁨과 ‘드디어 해냈구나’라는 보람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제주도의 식수문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이리 저리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해결방법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은 제주도 개발의 기본문제를 해결했다는 희망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yjkang@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