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기 위한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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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반백이 되어가니 머리도 반백이 되었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허허 웃는 친구, 그 소탈한 태도에 옆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홀가분해진다. 나이 먹는다는 의식은 곧 늙고 있다, 기운 빠지고 추레해진다는 자각으로 우울함과 연결되기 쉬운데, 그다지 유쾌할 것 까지는 없다 해도 늙어 가는 것이 대단한 비극도 아니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편안하게 만든다.

'우리 집에 전화해서 김 아무개 바꿔 달라는 사람들,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엄마 바꿔라 하고 말하길 바래. 우리 아이들이 소외감 느낀다 아니냐. 보통 가정집에 전화할 때는 아이들에게 엄마 바꿔달라고 하지 정식으로 엄마 성명 다 대니? 우리 아이들은 더욱 민감하다고.' 세상 사람들 사이로 파고 들어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제복 없는 수녀로 봉사하는 것을 선택한 친구가 주의를 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의식에 문제가 있긴 있었다. 혈연이 아니라 해도 종교의 품 안에서 가족을 새로 구성하고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희 엄마라는 말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은연 중 상처를 주는 행위일 수도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오십 오세에 남편이 죽어주면 오복 중에 하나란다’ 시달린 얼굴에 중얼거리는 한 친구의 농담은 어쩐지 절망적으로 들린다. ‘무슨 팔자에 과부는 되나?’ 하는 요즘의 약간 이상한 해학과 같은 부류에 속하겠지만, 또 '아내가 죽으면 남편은 화장실에 들어가 웃는다’는 말에 대응하는 소리로 나왔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그 친구가 안 되어 보인다. 왜 인간관계는 아기자기하고 풍요로워지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대신 삭막하고 형식적인 것으로 메마르고 고정되기가 더 쉬울까. 그렇게 숨 막히는 관계가 되면 바로잡을 길도 안 보이고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도 없어 보인다. 덫에 걸린 듯 진퇴양난이다.

‘아직 우리는 젊어, 난 지금도 떠오르는 샛별이야. 내게 중년이라는 말은 삼가 주라.’ 독신으로 살아온 친구의 발언. 정말 흰머리도 안 보이고 몸도 날씬하고 살결도 고와서 별처럼 반짝이는 것 같다. 자신의 가정을 새로 일구어 엄마가 되는 대신 자신의 엄마하고 지내며 아직도 어린 딸의 역할을 지속하는 친구들이 이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야, 아이들 대학가는 거, 걱정 할 필요 없다고, 일류 대학 나오면 누가 밥 먹여 준다니? 지방대건전문대건 가겠다는 대로 보내라, 다 자기 팔자대로 사는 거다.’ 제법 달관한 듯 말하는 친구, 다양하게 과외도 시켜보고 치마 바람도 일으켜 본 결과 아마 그런 경지에 도달했는지 모른다.

‘노 프로블럼하는 사람에게는 진짜로 노 프로불럼이다 이거야, 문제라는 것은 문제로 삼을 때 문제인 것이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게 되거든. 과연 문제가 있다 해도 해결될 수 있으면 그건 문제가 아니고, 또 놓아두면 저절로 소멸되게끔 생겨먹은 것이 문제란 말이지’ 중국식생활 철학이라고 펼치는 친구 말을 들으면 실상 삶이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는 것 같다.

학교를 떠난 후 한참을 못 보던 친구들, 나름대로의 전쟁을 치르거나 구도의 길을 걷다가 옛 마당으로 잠시 돌아온 사람들이라고 할까. 그 동안의 생활은 비누방울처럼 그들을 둘러싸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영락없는 중년이지만 우리들 끼리 있으면 아직도 소녀로 돌아간다.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 너머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살아나고, 늙어 가는 얼굴 속에 가려져 있는 다양한 공통 체험이 교실 안에서의 갖가지 장난과 함께 기억난다. 정답게 바라보면 객기를 부리든 허풍을 떨던 그러냐고 받아주며 같이 웃게 된다.

발갛게 물들다가 마지막 햇살을 안고는 툭 떨어져 바람을 타고 날아간 잎사귀들,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다시 새 순나고 새잎이 연두색으로 떠오를 것이다. 주어진 시간 황금빛 순간들을 만끽하다가, 무한한 자유를 향해 미련 없이 날아가는 날을 위해 떨어지는 연습을 하는 것, 그것이 삶인지도 모른다고 오늘은 친구들 덕택에 제법 현명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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