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독경(牛耳讀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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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前 제주예총회장/시인

요즘 제주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양진건 교수의 ‘매혹적인 이야기- 제주 유배문화‘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제주 유배문화 콘텐츠 개발에 대해 정부가 사업지원을 결정했고, 제주일보가 연재를 기획해 새해(2011년) 벽두부터 게재한 ‘제주 유배문화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보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이제까지 절해고도로 버림받고 변방의 설움으로 점철돼왔던 제주사(史)의 어두운 장막을 헤치고 스포트라이트를 들이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 ‘제주 유배문학 자료집Ⅰ’ 등 저서들과 관련 논문들이 뒷받침하고, 현재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 R&D센터의 책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는 양 교수의 저력이, 그사이 4개월째 16여 회에 걸쳐 소개된 ‘추사 유배길: 추사에게 길을 묻다’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신뢰가 갈 만하다.

 

제주도는 근래에 이르러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등재 자연과학분야 3관왕을 누리는 경사에다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도전하는 온갖 이벤트성 행사로 들끓고 있다. 이는 제주가 무한한 ‘자연과학적’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한다면, 이번 양교수의 제주 유배문화의 재조명 작업은, 사람이 살아온 섬으로서 무한한 ‘인문과학적’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쾌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와서야 제주를 ‘보물섬’이라고들 한다. 그것은 신이 내려준 천혜의 ‘자연과학적 접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 유배문화의 재조명 작업과 같은 ‘인문과학적 접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양 교수의 외로운 작업은 제주를 인문·자연을 두루 갖춘 완벽한 ‘보물섬’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역사적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큰 사업을 하려면 뭐니 뭐니 해도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텐데, 서두에 정부 지원 사업이라고 밝히고 있어 한 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양 교수의 글 중 한 문단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여기에 인용해본다.

 

‘지금 추사가 말년에 5년을 머물던 경기도 과천에서는 2012년 6월 완공을 목표로 100억원이 넘는 큰 사업비를 들여 추사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는데, 이제 추사 연구나 추사 관광의 메카로 경기도 과천이 될 가능성이 확실하다. 9년여 머물며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완성했다고 자부하는 제주도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공산이 크다. 이에 필자는 다른 지역에서는 넘볼 수 없도록 제주 유배인 200여 명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제주유배문화관” 건립을 제안한 바 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하략)’ 위 발췌문 중 끝 문장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한자성어로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우이독경’은 고의성 여부에 따라 그 뉘앙스가 달라진다. 그저 단순히 우마처럼 몰라서 그런다면 거론의 여지가 없지만,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제주의 문화예술정책이 푸대접을 받을 때, 또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때마다 항시 따라붙는 게 ‘우이독경’이거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 아니던가. 옛날 개발독재시대, 형편이 어렵던 시절에나 듣던 말이 아직도 살아있다니 새삼 놀랍다. 경기도 과천뿐 아니라, 일개 군단위인 경상남도 남해군에도 ‘남해 유배문학관’이 2010년 11월 1일 개관되어 운영되고 있는데, 조선시대 유배지 1위이고, 유배와 관련된 지식인 700여 명 중 50여 명이나 왔었던 제주도에서, 차마 우이독경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문제인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더군다나, 제주도가 2003년에 수립한‘제주향토문화예술진흥 중·장기계획’140쪽에 ‘제주유배문학관’을 포용하는 ‘제주문학관’ 건립 계획이 엄연히 나와 있는데, 실천 마감해인 2011년 올해까지 지지부진한 걸 보면, 이건 ‘우이독경’이 아니라 ‘오불관언(吾不關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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