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아라,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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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인류 62억명이 미국 사람들처럼 살려면 지구가 일곱 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살려면 두개반이 필요하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하다. 이 절제에 대한 세계적 합의가 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세계 정상들이 지구환경선언을 통해 채택한 지속가능한 개발 개념이다.

각국의 지속가능성지수를 평가하는 기관이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성지수를 개발하여 2년에 한번씩 지구촌 국가들의 지속가능성 순위를 발표한다. 환경단체가 아니라 경제단체가 이런 과업을 수행하는 것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경제도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무시하면 존립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금년 1월 발표된 평가결과에서 한국은 세계 146개국 중 122위였다. 한국은 석유소비 세계 6위, OECD국가들 가운데 최고의 대도시 미세분진 오염농도를 보인 국가였다. 우리가 국토의 환경용량을 초과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정부는 여전히 ‘국민소득 2만달러론’을 내놓고 경제성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정말일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쿠즈네프는 ‘일정 이상 경제 발달을 이룬 국가는 환경이 조금씩 좋아진다’고 갈파한 바 있다. 문제는 한국만은 경제력으로 보면 환경이 조금씩 좋아져야 할 대표적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책의 문제점을 짚기 전에 철학의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한국명 이 규)의 지적에 따르면, 한국은 이제는 슬로라이프(Slow Life)를 선택해야만 할 사회이다. 슬로라이프는 말 그대로 느림의 철학, 느림의 삶이다. 속도의 행복은 찰라의 행복이다. 과정 없는 결과만의 세계는 무자비한 효율의 세계이며 그 세계에서는 인간조차 결과를 위한 수단이 된다. 그런 삶이 행복한가? 경제 성장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하고 생산자로서만 살아가는 삶을 행복이랄 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은 비극이다.

빠른 속도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길에 대해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요즈음 우리가 생각하는 길은 효율성, 생산성과 같은 경제적 개념으로 온통 얼룩져 있다. A지점에서 B지점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길, 그래서 서울과 부산을 2시간 반으로 주파하는 고속전철이 놓여 지고 그 때문에 멀쩡한 도시가 둘로 쪼개져 마을공동체가 파괴된다.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여유가 생긴다고? 사실은 정 반대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신간선 고속전철이 개통됐을 때, 다섯 시간 이상 걸리던 도쿄 오사까 구간이 세 시간으로 단축되자 출장을 가면 저녁에는 생맥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런데 출장이 단축되어 그날 일을 끝내고 바로 돌아오게 되자 더 고달프게 됐다. 휴대폰이 생기면 일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만큼 일이 더 많아져서 오히려 더욱 더 바빠졌다. 마찬가지로 패스트푸드를 먹으면 쉬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고 생각했지만, 먹거리의 위기로 나타났다. 다국적 패스트푸드회사들이 규격화된 식품을 더 싸게 공급하기 위해 유전자조작식품이나 각종 식품첨가물을 넣어 식품 안전성의 위기와 영양 불균형을 불러왔던 것이다.

쓰지 신이치의 결론은 ‘지속가능한 친환경경제의 구성과 창조가 필요하다. 지금할 수 있는 것부터 삶의 뺄샘을 시작해 서서히 비본질적인 소비와 과도한 삶의 속도를 줄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빠른 것은 생략을 뜻한다. 생략된 것들은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다. 지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풍요로운 행성이나 탐욕을 충족시키기에는 터무니 없이 작은 별이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빌려 쓰고 있는 이 지구를 온전히 그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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