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물의 혁명②
제16화 물의 혁명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애월 수산 관정 성공하자 지하수 개발 요청‘봇물’
상가·귀덕·신엄·하효·중문·화순·외도지구 잇따라 착공
중산간 지역개발 성공에 서광·송당 중산간 도로 개설 자신
▲ 제주도는 애월읍 수산리 지하수 관정굴착에 성공한후 애월읍 상가리, 한림읍 귀덕4리 개발에 차례로 성공했다. 이에 탄력을 받은 제주도는 정부 예산을 들여 신엄지구, 서귀포 하효지구, 중문지구, 안덕 화순지구, 제주시 외도지구까지 상수도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사진은 제주지역 한마을의 통수식에 참석한 박경원 내무부 장관(가운데)과 김영관지사(오른쪽).

■ 지하수개발 본격화
처음 시도한 애월읍 수산리 지하수 관정굴착이 성공하자 이제는 도내 곳곳에서 우리지역에도 지하수를 파달라는 요청이 도청으로 쇄도해왔다.

 

제주도에서 지하수 개발의 성공은 단순히 식수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제주도개발의 동력을 확보했음을 의미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제주도 역사 이래 도민이라면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물 부족문제를 획기적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농업생산의 증대는 물론 공업용수확보를 통한 생산량 증대의 시대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만해도 지하수 개발이 처음 시작했을 뿐이어서 많은 도민들에게 상수도 보급이 이뤄지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후 미국 기술진이 돌아간 뒤 순수한 도내 기술진에 의해 애월읍 상가리에서 2차로 심정굴착을 통한 지하수개발에 성공했고 한림읍 귀덕4리에서 3차로 성공하는 등 연이어 도내 곳곳에서 지하수 관정을 통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1962년 4월 정부 예산을 들여 애월 신엄지구, 서귀포 하효지구, 중문지구, 안덕 화순지구, 제주시 외도지구에 상수도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상수도시설에다가 심정굴착 급수시설, 간이공동급수시설 등을 차례로 추진하면서 조금씩 상수도 급수혜택을 받는 도민들의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제주도청은 물론 제주시, 남제주군 북제주군의 공무원들의 힘이 컸다.

 

지금 내가 생각나는 공무원들로는 당시 총무국장인 김승우씨, 산업국장이던 김왕진씨, 제주시장으로 재직하다 과로로 숨진 김인호씨와 그의 뒤를 이은 김인지 제주시장, 강태식 북제주군수와 남제주군수인 김동익씨와 뒤를 이은 부윤경씨가 그 주역들이다.

 

이외에도 초대 산업개발국장이 된 김한준씨와 나중에 도지사까지 한 이군보씨, 김태진 강경주 현치방, 홍성림, 윤한병씨 등이 있다.

■ 전도 수맥조사실시
이와 함께 제주도의 광활한 중산간 개발도 이처럼 지하수를 통한 물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갔다.

 

이듬해인 1963년 제주도 전체에 걸쳐 체계적인 지하수 개발을 위해 국립지질연구소에 수맥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14개 지구에서 심정굴착에 의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애월 상가 한림 귀덕에 이어 대림 저지 인성 감산 김녕 평대 납읍 덕수 고산 함덕 송당 성읍 성산 수산, 신촌 하원 위미 태흥에서도 잇따라 지하수 굴착에 성공해 상수도를 통한 급수가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중산간 개발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나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반드시 이뤄내기로 약속했던 사업인 4.3사건 이재민의 원주지 복귀사업도 보다 쉽게 추진할 희망이 생겼다.

 

아울러 일제 때 만들었다가 방치됐던 제주-서광-토평-성읍-송당-제주를 잇는 중산간 도로의 개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도로는 일주도로나 한라산 횡단도로에 못지않을 도로로 도내 39개 자연마을을 잇는 중산간 최대 동맥이었다.

 

내가 도지사를 떠난 몇 년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제주를 방문해 제주도 중산간 개발을 위한 초대형 저수개발을 지시했고 그것이 바로 어승생 저수지이다.

 

이 어승생 저수지는 박 대통령이 직접 구상하고 설계도를 스케치해 기술진들에게 건내 줬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나는 비록 지사직에서 떠나 있었지만 박 대통령께서 제주도의 근본적인 물 문제 해결을 위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는 만큼 제주도의 큰 문제는 이제 해결되겠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 상수도 급수인구 3배 이상 증가
내가 도지사에 취임할 당시만 해도 제주도내 상수도 급수인구는 10%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당시 제주도민이 30만명 수준이었으니까 급수 혜택을 받는 인구는 3만5000여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나마도 제대로 된 급수가 아니라 제한급수였고 수도를 틀어도 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이후 1962년 급수비율은 34%에 이르렀고 내가 퇴임할 즈음에는 거의 40%에 가까이 확대된 것으로 안다.

 

당시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너무 신기해서 자꾸 수도꼭지를 틀어 보는 바람에 많은 수도꼭지가 고장 나곤 했었다.

 

어쨌든 나와 도청 공무원들이 해야할 일은 지하수를 파고 또 파는 일이었는데 워낙 지하수를 파달라는 요구사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너무 신이 났기 때문이었다.

 

지하수 개발 성공은 너무나 고무적인 일이었고 상상도 못할 물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공무원들 역시 좋아했다.

 

신바람이 난 지하수개발 행정이었다. 힘든 줄도 몰랐고 전력을 다해 땅을 팠다고 보면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하수 개발이 이뤄질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 백년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아니 평생을 그렇게 고생스럽게 살았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멀리까지 허벅을 메고 고생스럽게 물을 길러 다니던 여자들이 누구보다도 감격스러워했고 도민들은 지하수개발을 화제거리로 삼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눈 앞에서 땅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자 나는 물론 온 도민들은 물의 혁명을 실감할 수 있었고 온 섬이 환호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물과 도로의 개발이 제주도 개발에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개발이었고 이 두 개의 개발이 성공함에 따라 제주도 개발의 앞길은 훤히 열리는 것으로 봤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yjkang@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