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4.3사건의 아픔을 달래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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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유랑생활 청산한 4·3 이재민들 보며 보람”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에 도청 전 부서 출동
하례·저지·덕천·와흘리 등에 잇따라 복귀·입주
첫 기공식에 내무부 장관 내도 등 혁명정부 관심
▲ 4·3사건 이재민 복귀사업은 박정희 의장을 비롯, 중앙정부에서도 높은 관심을 나타낸 사업이었기 때문에 원거주지 17개소를 대상으로 융자자금이 내려오는 등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사진은 당시 북제주군 조천면 와흘리 이재원주지 복귀 기공식 현장.

■ 4.3사건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 기공식 가져
4.3사건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은 제주도청의 전 부서에 걸쳐 담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모두가 신나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총무국이 주관해서 사회과 산업과 교육과 건설과 등 모두가 관여해야 했고 그만큼 사업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도민 모두가 4.3사건에 이리저리 얽혀 있던 문제였고 4.3사건 이재민들은 어디다가 돌려보내달라고 말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로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은 도민 모두가 안타깝게 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도청의 공무원들은 다른 일과는 달리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사업과 관련해 전 도민은 4.3사건으로 불편했던 감정을 버리고 서로 의지하고 돕고 격려하는 단결과 화합의 분위기가 조성됐었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한 4.3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은 도외에 까지 알려져 부산 등 육지로 나갔던 사람들도 일부는 다시 원주지로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제주도내에 살고 있었지만 4.3사건당시 중산간 소개령으로 제주도를 떠난 사람이라도 제주도 사람이면 누구라도 혜택이 주어졌다.

 

1차년도 사업으로 816세대 4132명을 우선 입주하도록 하고 다음해에 800세대 3968명을 이주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세대당 30만환씩 저리 융자를 했고 주택과 우선 생활할 수 있는 기초적인 것을 지원했다.

 

4.3사건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은 곧 중산간 개발의 시작이기도 했다.

 

제주도의 넓고 넓은 푸른 중산간 지대는 심정굴착을 통한 지하수 개발을 통해 새로운 개발지역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이 사업을 착수한 지역은 남원면 하례리 계림동이었다.

 

당시 4.3사건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 첫 기공식 행사에는 내가 직접 주관했다.

 

이후 5개월만인 1962년 11월11일 처음으로 4.3사건 이재민의 원주지 복귀하는 준공식을 가졌다.

 

첫 입주지역은 한경면 저지리 명이동이었는데 당시 준공식 행사에는 박경원 내무부장관(소장), 이소동 치안국장(준장)이 참석해 중앙정부의 높은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혁명정부 최고회의에서는 큰 사업으로 중요하게 인식했고 잘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박경원 장관은 육사 1기로 나와는 국방대학원 동기생이었고 이소동 국장은 육사2기로 박정희 의장과 동기생이었는데 나이는 박 의장이 훨씬 많았다.

 

당시 입주민들은 4.3 사건당시 살던 곳에서 소개된 이후 15년만에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다들 감격하며 기뻐했다.

 

나로서는 제주도지사에 재임하면서 했던 일 가운데 참 뿌듯하고 보람이 있는 사업 중 하나였다.

 

4.3사건 이재민으로 원주지에 복귀한 분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늘 궁금했다. 잘 정착해서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꼭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나는 원주지에 복귀했던 분들은 4.3으로 인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겠지만 감격했을 것이다.

■ 4.3사건 이재민 복귀사업은 중산간 개발의 시작
나는 4.3사건 이재민 원주지 복귀사업을 추진하면서 중산간 초지를 개간해 농지로 조성하는 사업을 병행했다.

 

이재민들이 원주지로 돌아간 뒤에 생활을 해야 할 기반을 마련도 해야 하고 유휴지를 농지로 활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이 사업을 계기로 제주도 중산간 개발의 시작된 셈이다.

 

첫해 4월 나는 개간사업보조비 1억2860만환을 각 시군에 보내 4.3이재민 농가에 중심적으로 보조함으로써 중산촌 유휴지의 본격적인 개간에 착수했다.

 

4.3사건 이재민 복귀사업의 첫 사업으로 이뤄지는 원거주지 17개소를 대상으로 검토해 1차 사업의 융자자금이 내려오는 대로 이재민들을 복귀시켜나갔다.

 

한달 뒤인 5월에는 4.3사건 이재민 복귀사업 개간비로 4080만환이 내려오자 1정보개간에 10만환씩 지급하되 50%이상 실적을 보며 방출했다.

 

또 4.3사건 이재민들이 복귀할 주택 건축대상 266세대에 농기구 비료 종자 등 구입자금과 농사개척자금 축산자금을 별도로 구분해 지원했다.

 

그해 마지막 달인 12월 26일에 제주시 노형동 월산마을에 286세대가 새로 마련된 주택과 농토에 입주식을 거행하면서 1차년도 사업은 차질 없이 추진됐다.

 

새해 들어서도 1월5일에 65세대 293명이 구좌읍 덕천리 신설동에 입주했다.

 

2차년도 사업으로 800세대에 지원할 32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주택건설은 정부재정자금중 1동당 4만원씩 융자하고 자체노력으로 시공하도록 했다.

 

다만 4.3복귀주택 건설시 지난해처럼 집단적인 건축을 지양하고 복귀농가 희망에 따라 원주지에 분산적으로 건설하기로 했으며 대상지는 103개마을로 결정했다.

 

2차년도 기공식은 조천면 와흘리 등 각 지역에서 거행됐고 5월에는 제주시 아라 봉개지역 이주민이 입주했다.

 

3차년도 사업으로 2249세대 책정하고 8900만원 정부에 요청하는 것으로 내가 도지사에 재임시절 해야 할 일을 마무리했는데 내가 도지사직을 그만둔 이후에도 이 사업은 지속된 것으로 알고 있다.

 

2년간 1665명이 옛터에 정착했고 보조금에 의한 중산간 유휴지 개단도 2024ha에 이르렀으며 주택자금, 6개월간 식량 무상지급 개간비 1ha당 1만5000원 보조, 농우구입 농사자금 융자보조로 4.3사건 이재민의 원주지 복귀를 지원했다.
<정리=강영진 기자>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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