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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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암흑기에 마녀사냥이 있었다.

흉작이나 천재지변,전염병등 갑작스런 불행의 원인에 대해 당시 과학과 의학의 수준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고 국가는 흉융해진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방책이 필요했다.

더불어 십자군 원정의 실패로 교황권이 실추되고 로마 카톨릭교회는 ‘이단’들의 거센 도전에 부딪치면서 고전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318년 교황 요하네스 22세는 마녀재판을 이단심문의 관할하에 두도록 교서를 내림으로써 이단심문관에게 마녀사냥을 허용하고 연이어 마녀사냥 강화령을 발표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마녀사냥은 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했다.

처음에 마을 외진곳에 혼자살면서 민간 처방이나 주술을 행하던 노파정도로 인식되던 마녀가 점차 빈부귀천이나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그 대상이 확대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전염병이나 기근, 전쟁등 재난이 닥쳐오면 마녀의 저주때문이라 하여 무고한 아녀자들이 마녀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갔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영웅 소녀 잔다르크도 이 마녀사냥에 희생돼 화형에 처해졌다.

마녀사냥은 비단 카톨릭 국가뿐아니라 중세 유럽의 여러 신교국가에서도 있었다.

현대에 와서 이 ‘마녀 사냥’은 대중의 잘못된 믿음을 악용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거나 여론몰이등으로 희생시킬때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냉전상황을 악용해 사회지도층을 의도적으로 공산주의로 매도한 매카시 선풍도 이 마녀사냥과 상통한다.

우리의 경우 얼마전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쓰레기 만두’사건도 어쩌면 이에 속한다 하겠다.

상품가치가 떨어진 무를 썼던 것 뿐인데 마치 먹지 못하는 무를 써서 소비자를 우롱한 것처럼 만두사업자들이 여론에 매도돼 줄도산을 했다.

나중에 그 사업자들이 억울함이 사법당국에 의해 가려졌지만 이미 모든 다 잃은 후였다.

요즘 정부가 장관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라 한다.

추천 받은 인사들이 상당수 고사하고 있기 에서다.

장관으로 나가면 이것 저것 들춰내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니 차라리 안하고 말지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당연히 시시비비를 가려야겠지만 과장되거나 과도하게 매도되서도 안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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