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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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선 19세기까지 ‘결혼 테스트 기간’이란 제도가 남아 있었다.

미혼 여성과 남성이 같이 살아보고 마음이 맞으면 결혼 했던 것이다.

영국 요크셔 지방에선 예비 신부가 임신을 하면 정식 결혼으로 이어졌다.

당시 엄격한 종교계율 때문이었다.

예비신부도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예비남편이 남자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갈라섰다.

결혼하고 나서 실패하는 사례가 오죽 많았으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 유럽의 동거문화는 ‘결혼 테스트’와는 다른 것 같다.

▲최근 우리사회에도 “살아보고”라는 말이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실혼’이다.

사실혼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렀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다.

이런 관계의 신혼부부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2~3년 정도 살아보고 혼인신고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혼인신고는 결혼식후 늦어도 6개월을 넘기지 않았는데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위험 분산’ 이다.

성격차이로 헤어지더라도 호적에 이혼이라는 결정적 ‘흠결’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 투자에 열성적인 부모일수록 이를 권장한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물론 아직은 혼인신고부터 하는 부부가 더 많다.

▲서울 등 대학가 주변엔 대학생 동거 커플이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서로 사랑한다지만, 직접 살아봐야 상대를 알 수 있다는 게 큰 이유다.

성 도덕의 타락이라고 지적하면 ‘수구 골통’으로 내몰리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대학생 특유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결합된 산물이라고 진단한다.

대중문화도 이를 새로운 삶의 형태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선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후유증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동거는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 헤어지겠다는 것이다.

그 자체가 결혼한 부부보다 헌신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책임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참고 살아야 되는 삶의 굴곡을 어찌 이겨나갈 것인지 답답하다.

성인들끼리 합의라지만, “살아보고”라는 말은 결코 함부로 꺼낼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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