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실험 대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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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내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은 요즘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다.

그런데 고1 교실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은 고3교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옆자리 짝꿍이 더 이상 친구가 아니고, 친구들끼리 그룹으로 어울려 공부하던 다정한 모습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시험기간 중에는 책상 위에 놓아 둔 참고서가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이고 중요한 부분을 기록한 노트나 책이 찢겨져 나가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도내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인성교육이니 전인교육이니 특기적성 교육이니 하는 말들은 이미 교탁 밑으로 들어가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성 싶다.

교육인적자원부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 있는 글들은 더욱 험악하다.

'고등학교 1학년은 저주 받은 운명' 이라거나 '광화문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이자', '열일곱에 피말리는 전쟁을 하고 있다. 몇 명이나 더 죽어나가야 정신차리나' 등 격한 반응 일색이다.

이 같은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은 고교 1학년 학생들이 2008학년도 대입제도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인데다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들이 지금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는 수능 비중을 축소시키고 대신 내신 성적 반영비율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잠은 학교에서, 공부는 학원에서'라는 학생들의 왜곡된 생활을 바로잡아 공교육을 정상화 시킬 수 있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제도가 오히려 학생들의 정신적 공황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상대평가한 내신성적이 반영되기 때문에 짝꿍을 밀어내야 보다 좋은 내신등급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곧 대학입학을 보장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친구가 친구로 보일 리가 없고, 친구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덩달아 "내신이 좋지 않거나 중간고사 한번만 망쳐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국.영.수 등 주요 과목 중심으로 이뤄지던 학원 과외가 요즘에는 전 과목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교육 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된 새 대입제도가 오히려 학원수요를 늘리고 사교육을 심화 시켜 버린 것이다.

실제로 작년 6월말 747개 였던 도내 등록학원수가 올 3월에는 884개로 140개 가까이 늘었고 수강생도 13만6607명에서 17만5314명으로28.3%나 증가했다.

교사들도 난감해 하기는 매 한가지다.

만점을 받은 학생이 많으면 1등급 학생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내신이 나올까를 연구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가 2008학년도 대입시에서 수능성적은 반영하지 않고 대신 논술고사 반영비율을 높이겠다고 하면서 고1교실 혼란을 더 부추겼다.

예비 수험생인 고1학년들은 2008학년도 대학입시가 당초 내신위주의 전형으로 치러진다고 해서 1학기 중간고사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인데, 서울대의 이 같은 방침이 나오자 "우리가 입시 실험용이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문제가 이러한데도 교육부는 대학별 전형 기준이 10월말까지 마련될 것이라는 말 밖에는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대학들은 교육부만 바라볼 뿐 자율적인 기준을 마련할 재량은 별로 없어 보인다.

혼란이 더 깊어지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더 커지기 전에 교육부와 대학은 "우리가 입시 실험용이냐"는 어린 학생들의 아우성에 뭐라고 대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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