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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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경조사가 있거나 추렴을 해서 돼지를 잡았을 때 살코기만 주인이 갖고, 그 내장고기는 마을의 노인을 소유로 돌리는 것이 관례였다.

마을에 따라 60세 이상 또는 70세 이상의 노인이 있는 집은 골고루 등분해서 나누어 드렸다.

이 경로의 습속을 ‘배장(配臟)’이라 했다.

환갑이 지난 노부모를 모신 집에서는 양식이 떨어져도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먼동이 트기 전에 좀 잘사는 집에 찾아가 마당을 쓸어놓고 돌아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마당쓸이’라 하는데, 노부모 끼니 이을 양식이 떨어졌다는 묵계된 사안이다.

주인이 일어나 보고 누가 아침에 마당을 쓸었느냐고 묻고, 그 노부모의 나이를 물은 다음, 열흘 먹을 것 보름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베푼 곡식은 상환의무가 없다.

또 넉넉한 집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곡식을 동네에 나누어 주는데, 이를 아이의 수명을 비는 곡식이라 하여 ‘명곡(命穀)’이라 했다.

이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도 굶어죽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배장이나 명곡뿐만 아니라 마을마다 향약(鄕約)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규정이 있었다.

입동이나 동지, 제석(除夕) 날에는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에게 ‘치계미(稚鷄米)’라 하여 곡식을 나누어 드리는 습속이 있었다.

치계미의 경우는 잘 살고 못사는 사람 구분 없이 마을 모든 사람들이 출연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배장이며 마당쓸이. 명곡. 치계미라는 것 모두가 사회보장의 민속적 관행이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먹고 사는데 가난했을망정 적어도 최소한의 생계 걱정은 없었던 나름대로의 복지사회를 이루었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에는 새벽 아침에 찾아오는 동네 사람에게는 아무 말하지 않고 ‘솔박’으로 곡식을 퍼주는 것이 관례였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누가 배를 곪지는 않는지 이런 것들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주변 사람이 어찌되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세상이니 인정이 점점 각박해질 수밖에 없고 살맛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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