決 七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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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제주도 전역은 하나의 거대한 군영(軍營)이었다.

민간과 군의 구별이 모호할 정도였다.

각급 학교는 모두 휴업상태.

학생회의 명칭은 신풍대(카미가제. 神風隊)라고 바뀌었다.

이를 테면 당시 제주농업학교 학생회는 제농신풍대(濟農神風隊)였다.

학년 명칭은 적성대(赤城隊) 신주대(神洲隊) 등으로 고쳤다.

미국과 결사항전을 부르짖으며 전투훈련을 계속했다.

▲해안선마다 1차 방어선이 구축되고 동굴진지와 오름진지 등을 거미줄처럼 건설해 나갔다.

한라산 중산간을 넘어서 2차 방어선 진지들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건강한 민간인들 모두 진지공사에 동원되거나 비행장 건설 등에 나서고, 나머지는 군용 숯굽기, 저수지 파기, 무기. 식량운반 등에 참여해야 했다.

이 때 제주도 총인구는 23만여명.

그런데 결사항전을 준비하기 위해 제주도에 들어왔던 일본군은 무려 7만5000여명.

민간과 군, 30만이 옥쇄(玉碎)를 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일본 대본영(大本營)의 작전계획 ‘결 7호(決 七號)’는 이 같이 제주도에서 미군과 마지막 결사항전을 벌이는 내용이다.

1945년 4월부터 만주에 주둔했던 관동군 제111사단(사단장 柳川 중장)과 제121사단(사단장 正井 중장)이 제주에 들어왔다.

이어 일본 본토에 있던 제108여단(여단장 平岡 소장)도 들어왔다.

또 몽골 주둔군, 중국 파견군, 북지방면군도 왔고 해군. 공군을 포함, 조선반도에 남아있던 마지막 전차부대와 야전중포병부대까지 모두 왔다.

▲1945년 8월 제주도는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일본이 마침내 손을 들었다.

정부의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이해찬 국무총리.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광복 60주년기념사업으로 ‘결 7호작전, 제주 Wind Art Festival’을 오는 8월15일부터 27일까지 제주에서 개최한다.

이 행사의 취지는 무엇보다도 ‘평화’, 그리고 ‘희망’이다.

일제와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는 국민의 희망이 여기에 모아질 것이라고 한다.

도민들의 얼굴에도 이제 평화와 희망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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