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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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제5공화국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군부의 5공화국 탄생 과정이 전개되면서 하마평이 무성하다.

학창 시절 실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것들을 TV화면을 통해 보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다 문득 김종필씨를 떠올려 본다.

당시에 그가 왜 1인자의 기회를 포기했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영원한 2인자로서 정치인생을 마감한 지금의 그를 볼때도 그런 생각을 이따금씩 해본다.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그의 정치역정이 우리나라 현대정치사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1961년 박정희와 5.16을 주도했던 그는 초대 중앙정보부장등을 지내며 2인자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1968년 3선개헌반대등의 여파로 잠시 정계를 떠났던 그는 197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부총재로 복귀하고 1971년 국무총리가 됐으며, 1979년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공화당 총재로 피선됐다.

여당의 총재로서 사실상의 1인자가 된 그는 통일주체 국민회의의 간선제도에 의해 당연히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허나 그는 과도정부의 대통령을 마다했고 최규하권한대행이 1979년12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과도정부 이후의 1인자를 꿈꿨던 것 같다.

그의 야망은 1980년5월 신군부에 의해 좌절돼 정계를 떠났고 1987년 복귀해 신민주공화당총재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0년 3당합당을 통해 김영삼정부를 탄생시킨 공로로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이 됐고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김대중.박태준씨와 DJT 연대를 통해 새 정권을 창출하고 총리직에 오르기까지 했다.

2004년4월 총선 참패로 자민련 총재직을 사임하면서 영원한 2인자로서의 그는 40여년간 풍운의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기회는 수시로 찾아오는 것이 아닌 듯 싶다.

기회는 왔을때 잡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가 만일 과도정부의 1인자를 선택했다면 이 나라 정치역사도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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