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100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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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1일) 해병대 1000기로 지원한 허재온군 등 제주의 젊은이 18명이 포항훈련소에 입소했다. 무적 해병의 신화를 낳은 제주 해병 3,4기이후 1000기에 이르는 동안 선배 해병들의 무게만으로도 듬직한 이들 신참 제주해병들은 오는 8월 6일 수료하는 그날까지 포항의 찌는 듯한 무더위와 혹독한 훈련을 거쳐 정예해병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대한민국 해병의 역사는 곧 제주 해병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해병대의 출발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1949년 4월 15일 경남 진해의 덕산비행장 격납고에서 해군에서 차출된 병사들이 모여 창설됐다. 그들이 해병 1기다. 육군이 무기를 지급해주지 않아 해군기지에 일본군 소총으로 무장하고 광목을 염색해 만든 군복을 입었다고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맨처음 해병신화가 탄생하는 순간. 해병은 6.25를 통해 다시 태어났고 1기와 2기는 진동리 전투와 통영상륙작전을 이끌었다. 뉴욕헤럴드트리뷴지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는 통영작전 후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기사를 본국으로 전송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1951년 6월 도솔산 전투, 9월 김일성고지 전투, 마오쩌둥 고지 전투, 1952년 장단지구 전투로 이어지는 수많은 무공 뒤에는 해병 3,4기로 구성된 제주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강원도 양구군에서 있었던 도솔산고지는 미해병 5연대가 실패한 지역으로 한국 해병 1연대가 투입돼 탈환했다. 비와 안개로 항공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혈전을 벌여 북한군 전사자 2268명을 내는 전과를 올렸다. 이때 해병대 전사자는 123명이었다.

제주 해병 3,4기가 이끈 승전이었다. 해병대에는 피와 땀이 서린 당시 무공을 그린 군가 ‘도솔산의 노래’가 남아 있다.

▲지난 14일. 해병 1000기로 입대하는 신병을 3,4기 선임해병들이 격려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해병대에 들어가서는 요령을 배우지 말고 원칙과 진실을 배우는 해병이되라”라는 최고참 해병에 말에 허군은 “선배들에게서 아직도 해병 정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며 예의를 갖췄다.

빨간 명찰과 팔각모, 섀모 워커로 대변되는 해병대의 멋이 반세기를 흘러 신세대로 이어지며 끈끈한 유대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해병 1000기의 역사를 새로 쓰는 그 자리에서 고참 해병 누군가가 말했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21일 해병 1000기로 입대한 허군 등에게 무훈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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