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쓸쓸한 바람이 살고 있는

이 고원高原에

한 가지 소원을 묻어두었다

산 넘어 가는 구름

걸터앉아 쉬는 바위틈마다

봄눈 속에 피어난 산진달래

꿈에도 보인다

그 팍팍한 슬픔

보이지 않는 그 어딘가에서

이름 없는 것들이

열심히 피고 지는 까닭에

세상은 아직도 아름답다는데

가장 소중한 것

가슴에 묻어도

슬며시 빠져나와 깊은 잠 흔드는

더 이상 쓸쓸할 수도 없는

이곳에서

또 한 세상 살리라

그리움의 발길 헤매리라

- 김순이 「선작지왓」

 

 

   
▲ 강부언 作 선작지왓 탑괴-오름나그네 김종철선생님의 영혼이 깃든 곳.

 

 

윗세오름에 오름 셋이 나란하다. 삼형제 오름에 빗대 위에 있는 세 오름의 큰형격인 붉은오름과 가운데의 누운오름, 막내격인 족은오름(새끼오름) 셋이 머리를 맞대 소곤거린다. 윗세오름 산장은 어리목, 영실, 돈내코 탐방로가 만나는 중심지점으로 한라산의 웅장한 화구벽이 바로 코앞인 것만 같다. 서두른 걸음이어서인지 산 정상이 마치 차려진 밥상처럼 보임일까. 연일 무덥던 날씨도 서늘한 기운을 보이며 윗세오름 광장에 40~50명이 모여들자 오붓한 연대가 느껴진다. ‘한라산과 예술, 오름나그네’란 주제로 서른네 번째 예술난장을 연다.

 

“한라산이란 명칭은 1530년대 운한가라인야雲漢可拏引也에서 유래된, 산정에 서면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예부터 신선들이 사는 곳, 영주산瀛州山으로 불려왔고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영산 중 하나입니다. 이곳 윗세오름은 1,700고지로 웅장한 화구벽인 서북벽을 눈앞에 두고 있고 일대는 고산식물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선작지왓은 고원평원으로 봄이면 털진달래, 철쭉밭이 황홀하리만치 개봉을 시작, 계절을 달리하며 야생화의 향연을 펼칩니다….” 강양선 자연환경해설사의 한라산 자랑이 끝이 없다.

 

   
▲ 소프라노 섹소폰 연주가 나종원의 선작지왓에서 ‘청산에 살리라’를 연주하고 있다(원쪽) 오카리나 연주가 김영자의 ‘모란동백’을 연주하고 있다(오른쪽)

바야흐로 예술난장을 펼친다. 여는 음악으로 나종원 님의 소프라노 색소폰연주가 울려 퍼진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청산에 살리라」의 유장한 선율에 속세의 찌든 영혼을 잠시 씻어낸다. 앵콜곡 「칠갑산」마저 가슴을 파고든다.

 

정지용의 시 「백록담」을 김장명 시 낭송가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긴 호흡의 시를 감정 이입해 암송을 마치자 놀란 듯 작렬하는 눈빛들이 오간다.

 

한기팔 시인이 자작시 「백록담 가는 길」을 나이를 비껴간 청년처럼 읊고 있다. 백발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새삼스레 확인된다. 자연환경해설사 임복희 님도 「선작지왓」시를 읊으며 시인의 마음이 되어본다.

 

오카리나 연주자 김영자님이「모란동백」「뭉게구름」「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메들리로 뽑는다. 그사이 얇은 이불홑청 같은 구름이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며 한라산의 서북벽을 보이다, 가리다, 묘기를 부린다. 구름도 재능기부를 하는 중이다.

 

   
▲ (위에 윈쪽 시계 방향으로)한기팔 시인이 자작시 ‘백록담 가는 길’을 낭송, 김장명 시 낭송가가 정지용의 시 ‘백록담’을 낭송, 임복희 자연환경해설사가 시 ‘선작지왓’을 낭송, 가수 오다겸씨가 신곡 ‘마라톤 사랑’을 열창하고 있다.

낯익은 방송인, 지금은 가수로 데뷔한 오다겸 양이 최신곡 「마라톤사랑」과 「굿모닝 제주」를 발랄 모드로 열창하며 관객의 박수와 호응을 맛깔스럽게 끌어낸다.

 

마지막 순서로 등반객들과 어우러진 삼행시 짓기에 모두가 진지하다. ‘한라산’이 시제로, 당선작 발표에 이어 낭독 되어지는 시의 편 편마다 환호와 웃음소리가 산물결을 이룬다.

 

삼백 육십여 이 세상 오름을 다 넘고서도/선작지왓을 차마 건너지 못해/지나가는 바람과 구름과/새끼노루 발자국 소리에도 귀를 여는/이 산자락에 누워/자는다 쉬었는다. -한기팔 「백록담 가는 길」시의 인용이다.

 

일행이 선작지왓으로 들어선다. 일반 탐방객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인 만큼 사전 허가를 받아둔 테다. 조릿대군락과 진달래밭 우거진 곳을 지나려면 누구든 오체투지로 절하며 가야 한다던 말이 틀림없다. 처음 만나는 구름송이풀꽃, 호장근, 가시엉겅퀴, 산수국의 사이를 날아다니는 산굴뚝나비, 왕나비들. 넓디 너른 들판은 그야말로 한라정원이란 명명이 허사가 아니다. ‘오름나그네 김종철’이 가장 사랑했다는 곳, 차마 이곳 건너지 못한 그 사연 무엇이던지…. 탑궤에서 난장팀은 저마다 가슴으로 우묵진 바위 그늘에 앉아 담배 한 대 물고 그리운 눈 들어 남벽南壁을 바라보는 오름나그네를 떠올린다. 낭송하다 채 잇지 못한 시를 바람이 대독하던 선작지왓 -사무치게 쓸쓸한 발길을 공유한다.

 

 

 

글=고해자

그림=강부언

사진=임대규 국립공원해설사

연주=나종원, 김영자

노래=오다겸

시 낭송=김장명, 한기팔, 임복희

해설=강양선

 

 

※다음 바람난장은 19일 오전 11시 볼레낭게난장으로 보목리포구에서 집결·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