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 여덟 번째 바람난장이 제주문화포럼 제주신화전에서 진행됐다. 유창훈 作 ‘제주신화&바람난장’.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 적 있었다
감물 든 서쪽 하늘 물러지는 초저녁
새들이 다녀가는 동안 버스가 지나갔다.

 

다 식은 지붕 아래 어둠 덥석 물고 온
말랑한 고양이에게 무릎 한 쪽 내어주고
간간이 떨어진 별과 안부도 주고받지.

 

누구의 위로일까 담장 위 편지 한 통
'시청복지과' 주소가 찍힌 고딕체 감정처럼
어쩌면 그대도 나도 빈집으로 섰느니.

 

직설적인 말투는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좀처럼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이 없는
그대는 기다림의 자세, 가을이라 적는다.

 

   
▲ 김진숙 시 낭송가가 본인의 시 ‘빈집의 화법’을 낭독하고 있다.

-김진숙의 ‘빈집의 화법’ 전문

 

1만8천의 신, 신화의 섬 제주다.


제주 문화의 뿌리로부터 건져 올린 ‘제주신화전’ 개막식 날이다.


한 해가 기우는 12월 첫 주말, 제주문화포럼 지하 전시실은 신화 속 신들의 잔칫날인 양 화폭마다에 살아있는 표정들이 자못 친근하다.

 

‘제주?일본 신화교류전’은 신화를 통한 문화교류의 장으로 제주문화포럼은 2005년부터 ‘신화의 기억을 나누다’란 주제로 일본에서 공동 전시로 7회째 이어진다.


이날 제주의 전시 오프닝에 앞서 갖게 된 난장인데 서울서 도착하는 난장 식구들의 늦은 도착으로 진행 순서가 조금 뒤바뀌니 양영길 이사장의 인사말씀도 듣게 된다.


그중 “신화는 역사보다 오래된 살아있는 이야기…. 참가 작가들의 신화적 상상력에 근거한 지역사회 문화를 보다 더 충만한 문화 사회로 나가는 화두의 작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시된 작품 차례로 작가의 작품 배경 설명도 이어지니 작품 이해에 도움이 크다.

 

어느덧 49회 바람난장의 문을 연다.

 

통상적으로 시 낭송은 전문 낭송가들이 하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시를 쓴 작가들의 육성으로 시심을 듣는 순서다.

 

김진숙 시인의 청아한 음성으로 ‘빈집의 화법’ 감상에 시심을 거닐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본 적이 있는지’ 되묻게 한다.

 

두 번째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노랑머리 이명숙 시인의 ‘머리꾼’ 낭송을 듣는다.


‘그 마음 만지작댈 뿐 허공만 잘라낸다’의 행간에 마음이 오래 머문다.

 

 

   
▲ 김재현 연주가가 바이올린 연주로 ‘타이스의 명상곡’을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바이올린 연주 순서로 제주도립교향악단 김재현 단원의 ‘타이스의 명상곡’ 연주 가 펼쳐진다.


어떤 소음조차 끼어들 수 없도록 진지한 가운데 연주에 몰입되고 저마다의 꿈을 어루만지듯 청아한 선율에 흠씬 빠진다.


아련한 상상의 나래까지 펼치게 하는 마력에 연주가 끝나자 박수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이재정의 '바람신 ‘영등 2017‘’ 앞에, 보라색 모자와 조끼를 입고 혼돈의 시간 속 길을 찾은 듯, 화통한 웃음에 검지 하나 척 세운 할머니의 콧등이랑 위, 유난히 깊은 골 위로 무한히 빨려 들고 만다.

 

숨어 있는 가치에 하나씩 옷을 입히며 꺼낸 문화의 자리매김, 아름다운 모색이 아닌가. 세상 속으로 드나드는 길목마다 바람길을 내는 신명 같은 장이다. 

 

글=고해자
그림=유창훈
사진=허영숙
시 낭독=김진숙, 이명숙
바이올린 연주=김재현

 

*다음 바람난장은 15일(금) 오전11시, 서귀포시 남영호 추모관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