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원시림의 영혼이 춤추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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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하논 분화구(下)
미르형 분화구에 형성된 이탄습지…생물체 오래 보존
6000년 전 이후 지금까지 경작 등으로 지층이 훼손돼
일본 도쿄도립대 후쿠자와 히토시 교수가 서귀포시 하논 습지를 시추한 결과 3만년 전까지는 지층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6000년 전부터 지층이 경작지 등으로 훼손됐다. 유창훈 作 ‘하논에서 춤을’.
일본 도쿄도립대 후쿠자와 히토시 교수가 서귀포시 하논 습지를 시추한 결과 3만년 전까지는 지층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6000년 전부터 지층이 경작지 등으로 훼손됐다. 유창훈 作 ‘하논에서 춤을’.

잃어버린 마을 하논

-김정희

사람이 살던 곳

사람은 떠나고 빈 마을로 살아왔다

 

(중략)

가을 바람난장

불같이 날아드는 고추잠자리처럼 자유롭다

 

돌을 들어 올리는 그녀/손짓으로 흐르는 하논

사뿐히 옮기는 발길로/성당터에 춤을 풀어놓는 그녀

 

애틋한 호수의 눈길로/사람을 보는

, 어디서 들려오는 구음에

애간장 태우는/제단에 놓인 그녀

 

춤과 소리가 받쳐져/마르 하논에 넋도 잠든다

 

백년생 은행나무 그늘로 사람이 모여든다

 

정민자 연극인이 낭랑한 목소리로 인류의 소중한 자연유산인 ‘하논’을 설명하고 있다.
정민자 연극인이 낭랑한 목소리로 인류의 소중한 자연유산인 ‘하논’을 설명하고 있다.

하논 분지 위쪽에 난 도로의 길가 나무 사이로, 쌩하니 달리는 차를 보며 분화구임을 더 실감케 된다. 분지 안으로 고개 내밀고 들어오는 흰 구름 몇 덩이가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연극인 정민자의 낭독공연이다. “하논의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큰 논이라는 뜻입니다. 화구 경사면을 덮던 울창한 원시림은 땔감, 감귤농사로 사라졌구요, 개발은 분화구의 훼손을 앞당깁니다. 하논에다 야구경기장을 만들자, 고급호텔 등 관광위락시설을 짓자는 여론도 있었죠. 시대적 가치가 달라졌죠. 하논분화구는 우리나라, 인류 전체의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 마르형 분화구에 형성된 이탄습지는 자연 상태의 생물체를 부패시키지 않고 장기간 보존합니다. 우리나라는 이탄습지란 자체가 드물고, 분화구 안의 형성은 더욱 귀해 하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시죠? 물질을 썩게 하는 미생물이 부족해 꽃가루, 식물 등이 시대별로 퇴적된 타임캡슐입니다.

일본 도쿄도립대 후쿠자와 히토시 교수가 이 습지를 9.5m까지 시추한 결과, 6천 년 이후 현재까지의 지층이 경작 등으로 훼손됐으나, 3만 년 전 지층까지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단 결과도 내놓았죠. 특히 6천 년 전에는 지금의 서귀포 지역 기후와 비슷하지만, 18~2만 년 전 연평균 기온이 0~3로 매우 추웠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또한 극동아시아 지역의 기후 변동에 큰 영향을 주는 따뜻한 쿠로시오 해류는 제주가 다른 대륙에 비해 2~3천년 빠른, 빙하시대의 종결을 찾아냈구요, 미래를 위한, 가치 있는 자연유산을 잘 보존하고 지켜냅시다. 개발로 마구잡이식 훼손, 이젠 그만하자구요. 지금도 너무 훼손되어 안타깝습니다. 이참에 다짐 한번 하시죠?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 우리가 지키자구요!” 불끈 힘을 준다.

 

박연술 춤꾼이 은숙 소리꾼에 맞춰 춤을 췄다. 돌담 위 맨발로 올라서 제를 드리듯 위무했다.
박연술 춤꾼이 은숙 소리꾼에 맞춰 춤을 췄다. 돌담 위 맨발로 올라서 제를 드리듯 위무했다.

춤꾼 박연술과 소리꾼 은숙의 공연이다. 옛 성당 터의 상징인 듯 바람으로 익어가는 땅주제의 콜라보다. ‘이름 없는 바람곡이 흐르자 춤꾼은 돌담 위에 맨발로 올라서서 제단인 듯 두 손으로 돌을 높이 들어 위무한다. 소리꾼의 낮은 구음이 흘러들자 5만년의 깊은 하논 바닥끝까지 휘돌아오는 여운 깊어진다. ‘바람이 불어오는 땅, 푸르름이 익어가는 땅, 빛으로 물들어 가는 땅, 사랑으로 이루어가는 이곳.’ 하논 분화구의 심정을 나눈다.

난장공연 중에 즉흥시를 지은 사회자 김정희다. 난장을 진행하다 시 창작까지 여유롭다. 풋풋한 즉흥 시 낭송에 애틋한 호수의 눈길로/사람을 보는.’ 짙푸른 스케치다.

늘 대미를 장식해주는 서란영의 꽃반지 끼고팬플룻 연주에 난장팀의 콧노래가 새어나오고, 오카리나로 망부석이 연주되자 수시로 끼어들던 새들도 침묵한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팬플룻 연주에 합창은 이내 하논 들판을 짙게 어루만진다.

한껏 여물며 겸손해지는 하논의 속살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난장팀이 이곳을 처음 찾았듯 5만년의 비밀을 간직한 곳, 아직 접하지 못했다면 이 가을에 발걸음 놓치지 않길 바래본다. 습지의 보존, 복원시켜야하는 기로의 큰 숙제는 바람직한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관계의 존재에서 행간의 붉은 소리들을 되새긴다.

 

은숙 소리꾼이 낮은 음성으로 부른 ‘이름 없는 바람’이 하논을 감싸안았다.
은숙 소리꾼이 낮은 음성으로 부른 ‘이름 없는 바람’이 하논을 감싸안았다.

다음 바람난장은 929일 서귀포 삼매봉 정상에서 오후8시에 갖습니다.

=고해자

그림=유창훈

낭독공연=정민자

영상·사진=채명섭

사회·시낭송=김정희

·소리=박연술·은숙

연주=서란영·성민우

음악감독=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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