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동그란 눈, 옅은 미소의 입술···지역을 수호하는 상징물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절은 사라졌지만 석상은 그대로 남아
“다시 만나려면 얼마나 걸릴까.” “글쎄… 얼마나 걸리려나….” 참 싱거운 문답이다. 오랜 시간 만남과 작별을 거듭하며 사랑을 나눠온 두 석상(石像)의 사연은 이렇게 무던하고 담백하다. 애써 말을 고르지 않아도 되는, 침묵으로 지켜온 그런 견고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주말, 바람난장은 그 특별한 사연을 가진 석상 ‘동자복’ 앞에서 다시 만났다.
반가운 얼굴이 바람난장의 첫 문을 열었다. 제주도의회 문종태 의원이다. 김만덕기념관을 비롯해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건입동 일대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자랑했다. 그리고 그 대표 격이 바로 ‘동자복’이라는 것이다.
크고 동그란 눈, 옅은 미소의 입술, 점잖게 쥔 두 손까지. 투박해 보이지만 정겹고, 온화하면서도 위엄 있는 모습이다. 언뜻 돌하르방처럼 보이는 이 석상은 ‘복신미륵’이라 불리는 불상이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문헌 및 연구 자료가 없어 우리는 귀한 분을 모셨다.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강문규님이다. 고려시대 절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나, 조선시대 이형상 목사 시절 억불정책으로 절은 사라지고 지금의 석상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석상은 건입동과 용담동에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제주성의 동쪽과 서쪽을 각각 수호한다 하여, 그 이름도 ‘동자복’, ‘서자복’이다. 그리고 거기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천년 동안 봄이면 꽃바람에, 여름이면 시원한 빗줄기에, 가을이면 쏟아지는 별빛에, 겨울이면 하얀 손짓을 서로에게 건네며, 그들은 사랑을 맹세하고 속삭였을 것이다. 까마득한 세월동안 단 한 번도 껴안아 보지 못한 채 그리움만 전하며 눈물의 시간을 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의 말처럼 ‘한 눈 한 번 팔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생’. 무릇 진짜 사랑은 그런 것일까…. 연극인 강상훈님의 담담해서 더 슬픈, 시 낭송을 들으며 우리는 저마다 그리운 사랑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이어진 성악가 오능희님의 노래 ‘사랑의 기쁨’과 ‘내 마음(김동진 곡)’에 더 깊고 더 오래 사랑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세월도 끊지 못한 사랑. 천년을 건너 온 사랑. 만나고 헤어지기 쉬운 요즘의 인스턴트 사랑에 동자복의 사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메시지다. 어쩌면 오늘 바람난장의 예술로 되살아난 동자복의 영혼은 비바람을 타고 서자복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을 것이다.
그리운 내 사랑, 그동안 잘 있었느냐고…
사회=김정희
해설=강문규 그림=홍진숙 시=오승철 김효선 시낭송=강상훈 정민자 성악=황경수 김영곤 오능희 반주=김정숙 리코더=오현석 음향=최현철 영상=김성수 사진=채명섭 음악감독=이상철 글=김은정 장소 협조=제주시 건입동행정복지센터(김미숙 건입동장님, 유창호 주민자치위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