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낭만…신들의 뜰에 바람이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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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제주문학관 上
개관 300일 맞이한 제주문학관서 선보인 신명나는 공연들
정겨운 돌담벽·소나무 배경삼아 시낭송·소금 연주 등 펼쳐져
올해 세 번째 바람난장이 지난 20일 제주문학관에서 펼쳐졌다. 야외는 정겨운 돌담벽, 고요한 연못, 웅장한 소나무들로 운치가 있다. 고은 作.
올해 세 번째 바람난장이 지난 20일 제주문학관에서 펼쳐졌다. 야외는 정겨운 돌담벽, 고요한 연못, 웅장한 소나무들로 운치가 있다. 고은 作.

구름 사이로 숨어들던 햇살이 소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고개를 내민다. 아직 해는 하루 일을 마무리하느라 종종걸음이다.

제주문학관 야외무대는 정겨운 돌담벽, 그 안에 고요한 연못, 돌담벽 뒤에 웅장하게 서 있는 소나무,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 조각까지 오늘의 공연을 기다리는 듯하다.

조명등이 환히 켜지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조명등 빛을 받은 작은 연못에도 빛이 흐른다. 소나무 숲에서 돌담 안으로 들어온 바람이 연못을 노크했는지 물결이 파르르 떨고 주변 나뭇잎들도 춤을 춘다.

바람난장 정민자 대표가 인사를 하며 올해 세 번째 바람난장의 문을 열고 있다.
바람난장 정민자 대표가 인사를 하며 올해 세 번째 바람난장의 문을 열고 있다.

정민자 대표의 시작하는 말은 공감이 갔다. 즉 코로나가 2년 넘게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코로나 상황을 헤쳐나가는 힘을 예술에서 얻자고 했다. 제주문학관이 이 자리에 세워지고 개관한 지가 오늘로 301일째란다.

사실 필자를 비롯한 제주의 많은 문학인이 제주에 문학관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숙원 했었다. 그 숙원이 이루어졌고 개관 300일이 넘었는데도 문학인들을 제외하고는 그 사실을 아는 도민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과 같은 공연이나 일반 도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를 자주 열다 보면 도민과 더 친숙한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주문학관 강용준 명예관장님도 인사말씀에서 제주문학관은 제주도민 모두의 것이라며 누구라도 자주 찾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제주에 1만 8000명의 신들이 있다면 이 야외무대를 둘러싼 돌들도 대략 1만 8000개 쯤 된다면서 이곳을 ‘신들의 뜰’이라고 부르고 싶단다. 신들이 방선문에서 놀다가 내려와 여기 연못에서 손과 발을 씻을 것이라나. 제주문학관 개관 300일 축하하는 뜻깊은 공연이라면서 신명 나는 공연으로 푸닥거리를 해주면 좋겠다는 말씀도 곁들였다.

정말 신들의 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돌 하나 하나에 신들의 영이 숨어 있을 수도 있겠지. 방선문이 아닌 제주도내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이곳 연못에서 담소를 나누며 씻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연못과 돌담벽의 조화가 한층 멋스럽다.

첫 무대는 윤행순의 ‘토끼섬’이라는 시가 김정아 시 낭송가의 목소리로 타고 흐른다.

오랜만에 바람 따라 물 따라 나섰는데

구좌읍 하도리 1번지 토끼섬이 보이네

이제껏 어디 숨었다 폴짝 뛰어 나왔니

낚싯배 하얀 뱃길 저 섬 끌고 가는지

신병 들린 무당처럼 내 가슴도 끌고 간다

못 다 쓴 습작 시 한 줄 어디에나 놓고 갈까

가을 바다 떠도는 내 길은 어디쯤인가

썰물도 문주란도 편지처럼 접어놓고

길 하나 물에 잠기며 섬이 되는 사람아

- 윤행순 시인의 ‘토끼섬’ 전문

흘러가는 게 인생이다. 흐르는 그 길목에서 만나는 어떤 것들이 나를 이리 저리로 끌고 다닐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지금 하던 일을 접어놓고 따라나서야 할 때가 오리라. 나는 어디쯤까지 끌려왔을까?

현희순님의 신시사이저 반주와 함께 청성곡이 흘러나온다. 청성곡(淸聲曲)은 맑은소리로 온 누리를 정화하여 질병, 어려움 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곡이다.

연주가 전병규가 소금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가슴을 깨운다.
연주가 전병규가 소금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가슴을 깨운다.

전병규 연주자는 ‘우리 안에 맑은소리를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청성곡을 연주한다’고 하셨다.

소금 연주를 라이브로 듣다니 행복한 순간이다. 단소 소리와는 조금 다른 듯 같은 듯하나 맑고 청아한 소리가 가슴을 깨운다. 저 소리가 내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들을 깨끗이 씻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마치 어느 산사에서 흘러나오는 듯 청아한 소리다.

두 번째 귀소(歸巢)는 청성곡에 비해 율동감이 있다. 연주자는 원래 마음자리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이 곡을 선택했단다.

연주를 듣노라니 마치 어린 동자가 소의 등에 타서 동네 어귀에 있는 집으로 가는 모습이 상상된다.

시낭송가 김정희가 오승철 시인의 ‘서귀포’를 낭송하며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고 있다.
시낭송가 김정희가 오승철 시인의 ‘서귀포’를 낭송하며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고 있다.

김정희 시 낭송가가 오승철 시인의 ‘서귀포’가 낭송되었다.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오 시인, 섶섬바당 노을이 뒈싸졈져”

노 시인 그 한 마디에 한라산을 넘는다

약속은 안했지만, 으레 가는 그 노래방

김 폴폴 돼지 내장

두어 접시 따라 들면

젓가락 장단 없어도 어깨 먼저 들썩인다

‘말 죽은 밭’에 들어가 까마귀 각각 대듯

한 곡 더 한 곡만 더

막버스도 놓쳤는데

서귀포 칠십리 밤이 귤빛으로 익는다.

- 오승철 시인의 ‘서귀포’ 전문

섶섬바다 노을이 뒈싸지는 날 나도 서귀포를 보고 싶다.

▲사회=정민자 ▲소금연주=현희순, 전병규

▲플루트=이관홍 ▲색소폰=최경숙

▲시낭송=강상훈, 김정아, 김정희, ▲성악=윤경희

▲즉흥춤=장경숙 ▲북장단=조성구

▲그림=고은 ▲사진=허영숙 ▲글=김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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