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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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대 차석으로 입학...사람 생명 살리는 신경외과 전공
제주대병원 재직 당시 도내 유일의 뇌출혈 수술 의사로 활약
‘모야모야병’ 세계 최초로 유전적 요인 밝혀내며 매년 해외 강연
“의술과 인술 겸비한 명의 배출하는 서울의대 만들어나갈 것”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이 대학에 세워진 히포크라테스 동상 앞에 서 있다. 동상 옆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비문에는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이 대학에 세워진 히포크라테스 동상 앞에 서 있다. 동상 옆 히포크라테스 선서문 비문에는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글귀가 새겨져 있다.

20년 전 제주에서는 뇌출혈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없었다. 뇌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뇌 손상이 오고 상태가 악화되면 사망에 이른다.

밤중에 환자가 긴급 이송돼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비행기가 뜨는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했다.

항공기 좌석 6개를 붙여서 침상을 만들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옮기려면 수 백만원이 들었다.

더구나 뇌압이 있거나 기내 기압으로 더 큰 출혈이 생길 수 있는 환자는 비행기에 탑승조차 못한다. 제주에 산다는 이유로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52)은 2002년부터 1년간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학교실 전임강사이자 뇌출혈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의사로 부임해 많은 생명을 살려냈다.

▲서울의대에 차석으로 입학

김 학장은 1970년 제주시 일도2동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제주교대부속초와 제주중앙중, 오현고(35회)를 졸업한 그는 1987년 서울의대 의예과에 차석으로 입학했다.

당시 학력고사에서 그는 전도 수석을 차지했다. 본인은 ‘모범생’처럼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이어서 과외는 일체 금지됐습니다. 오로지 공교육으로만 대학에 들어갔는데 당시 제주의 교육열은 남달랐습니다.”

평소 생물 과목에 흥미를 갖고 인체의 신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의대 진학 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신경외과(뇌·척추)와 흉부외과(심장·폐) 전공을 놓고 고민했다.

그는 뇌종양 분야의 세계적 명의로 꼽히는 정희원 전 서울대병원장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뇌혈관·뇌종양 질환을 평생 전공으로 삼았다.

레지던트(전공의)를 마치고 경남 마산의료원에 공중보건의사로 재직하던 2000년에는 의약분업을 놓고 전국병원의 90%가 문을 닫았다. 그는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마산의료원에 텐트를 치고 살면서 아픈 환자를 보살폈다.

▲제주에서 뇌출혈 환자를 살려내다

서울의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그는 2002년 고향에 내려와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겸 제주대병원 의사로 재직했다.

뇌출혈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병원에 왔지만, 뇌동맥류의 잘록한 부위를 집어서 조이는 정교한 클립이 병원에 없었다. 미세혈관을 이어붙일 현미경은 있었는데 여기에 달린 조명기기가 없었다.

제주시 삼도2동 옛 제주의료원 건물에 들어선 당시 제주대병원은 뇌출혈 환자를 수술한 사례가 없어서 수술기구와 장비마저 부족했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필요한 기구를 빌려와서 수술을 집도했다.

“제가 고향 제주에 내려온 후 뇌출혈 환자를 처음 수술했다. 수술기구를 빌려오면서 집도한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의사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주대병원이 최초로 뇌동맥류 파열 환자를 살렸다는 기사까지 나오면서 보람을 느꼈다.”

제주대병원에서 ‘머릿속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뇌출혈 환자를 20명 넘게 살려낸 그에게 모교인 서울대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더 많은 뇌출혈 환자를 수술해 달라”고 했다. 그는 고향 제주에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누리며 낭만적인 여생을 꿈꿨던 기회를 접고 서울대병원으로 재 입성했다.

뇌혈관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이 뇌출혈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뇌혈관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이 뇌출혈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모야모야병’ 세계 권위자가 되다

그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의대 의학과 신경외과학교실 교육담당 교수로 부임하면서 우수한 의사를 양성했다.

2011년 ‘뇌막과 뇌혈관’ 강의를 개설, 뇌혈관에 대해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강의를 진행했다. 이 강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의대에서 두 번째로 큰 병원인 보스턴 소재 ‘브리검 앤드 위민스 병원’에서 2년간 연수를 마친 그는 서울대병원 외과계 중환자실장, 의사국가시험 실기시험 채점위원에 이어 서울의대 의예과 신입생 면접위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매년 150~200례의 뇌수술을 집도했으며, 뇌동맥류의 치료, 허혈성 뇌질환의 수술적 치료법을 정립했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상임이사 재직 시 악성 뇌경색 질환에 대해 표준 진료 가이드라인(지침)을 제시했다.

2014년 서울의대 국제협력실장을 맡을 당시 그의 노력으로 서울의대는 세계 유수의 의과대학과 학술·연구 교류 협약을 이끌어냈다. 그는 전 세계 33개 의과대학과의 교류를 72개 대학으로 두 배나 늘렸다.

2016년에는 서울의대 입학지원실장을 맡으면서 의사를 꿈꾸는 신입생에 대한 인적성면접(MMI)을 도입했다. 이후 외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의대 연구부학장에 올랐다.

그는 모교 교수에 임용된 이래 뇌혈관질환 분야에서 꾸준한 학술·연구 성과를 일궈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하는 SCI급에 총 219편의 원저 논문과 14편의 리뷰 논문을 정기학술지에 발표했다. 15권의 단행본 도서 출간과 2권의 역서를 감수했다.

하루 3시간을 자면서 실력을 겸비한 그는 뇌혈관 질환의 최고 권위자가 됐다. 그는 안주하지 않고 서양인에게는 드물고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인에게만 주로 발병하는 ‘모야모야병’에 대한 연구에 몰입했다.

많은 논문이 발표됐지만, 아직도 밝혀야 할 부분이 많다고 여긴 그는 유전적 요인에 대해 연구를 거듭한 결과, 세계 최초로 ‘염색체 17번의 RNF213’의 유전적 요인을 밝혀냈다. 이 병에 대해 세계적인 석학이 된 그는 모야모야병 국제학술대회에 빠짐없이 초청을 받고 있으며, 해마다 2차례 강연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제36대 서울대의대 학장에 오르다

지난해 12월 제36대 서울의대 학장선거에서 김 교수는 신임 학장으로 선출했다.

서울의대 교수 527명 중 해외 연수·학술 대회에 참석한 교수를 제외한 503명(95.4%)이 투표에 참여했다. 3명이 경합을 벌인 선거에서 김 교수는 과반이 넘는 273표(54.2%)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신임 학장에 당선됐다.

“학장이 되려고 출마한 게 아니라 서울의대의 미래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에 선거에 나섰습니다. 세계 일류로 도약하는 자랑스러운 글로벌 리더로 서울의대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김 학장은 “똑똑하고 1등만 들어온다고 해서 서울의대가 최고의 의료교육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교수진에 있어서 남녀 성별과 출신 대학, 근무지별, 전공분야를 모두 아우르고 포용하면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리더십을 갖추는 것이야 말로 서울의대 답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학장은 “학력고사를 잘 봤다는 이유 하나로 서울의대에 입학한 저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았다. 고난과 역경에도 고향 제주는 저를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며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반드시 돌려주기 위해 뛰어난 의술과 함께 따뜻한 인술을 베푸는 명의를 배출하는 서울의대가 될 수 있도록 2년간의 학장직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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