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제주신화의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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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귀덕1리 복덕개 포구 마당-(下)

바람의 신 영등할망 찾는 마을서
詩 낭독하며 관객과 함께 공감
영등석상 세워진 돌담길 걸으며
바다와 같은 인자한 마음을 느껴
지난 11일 바람난장 행사가 귀덕1리 복덕개 포구 마당에서 진행됐다. 유창훈 作, ‘귀덕리복덕개포구’.
지난 11일 바람난장 행사가 귀덕1리 복덕개 포구 마당에서 진행됐다. 유창훈 作, ‘귀덕리복덕개포구’.

제주 신화가 시작되는 마을 귀덕1리에는 옛 포구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어디에 걸터앉아도 바다가 보인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바다가 보이는 객실은 숙박비도 비싸다고. 하지만, 귀덕1리 포구에서는 바다 풍경이 공짜다. 그렇다고 밋밋한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 영등할망 신화공원이 바로 이곳에 있다. 그 묵직한 이야기와 함께 귀덕에는 또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었을까.

‘사건’을 낭송 하는 김정희 대표.

귀덕리 회관에 지난밤 도둑이 들어
쓸만한 가재도구는 모두 가져갔대요
구석에 
휘어진 옷걸이
몇 개만 남겨두고

한걸음에 소식 듣고 달려온 할머니들
쓸어내린 가슴에 구덩이 푹 파이는데
뒤늦게 
당도한 할머니 왈
늙은이만 놔뒀네!

-김양희 ‘사건’ 전문

김양희 시인의 ‘사건’을 낭송하려 무대에 서는 김정희 대표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린다. 맛깔스럽게 시의 느낌을 살린 낭송에 관객들의 묘한 표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귀덕리 회관에 지난밤 도둑이 들어/’라는 대목에 ‘무슨 일이래?’, ‘휘어진 옷걸이/ 몇 개만 남겨두고/’라는 대목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가’, ‘뒤늦게/ 당도한 할머니 왈/ 늙은이만 놔뒀네!/’ 대목에서는 관객도 낭송가의 얼굴에도 야릇한 웃음이 번진다. 

무대에 서면서 애초 지었던 김정희 대표의 미소를 알겠다. 여운이 남는 웃음에는 씁쓸함도 묻어 있다. 우리는 모두 늙어 가고 있음에.

에어로폰을 연주하는 이춘애 연주가.
에어로폰을 연주하는 이춘애 연주가.

에어로폰 이춘애 연주가는 연주곡으로 ‘보랏빛 엽서’와 ‘민들레 홀씨 되어’를 들고나왔다. 전자악기다운 순간순간 강한 음 빛깔이 관객과 한 호흡이 되니 담벼락 금잔옥대도 향을 한 잔 한 잔 ‘툭툭’ 실어 보낸다.

제주도는 음력 이월 초하루가 되면 갑자기 추워진다.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시베리아에서 서북 계절풍을 몰고 와 그렇다는 믿음이 크다. 
영등할망이 제주에 올 때는 할망을 수행할 영등신들과 함께 귀덕1리 복덕개 포구로 들어온다. 

올 때 딸을 데리고 오면 날씨가 풀리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궂은 날씨가 이어진다. 비옷을 입은 영등이 오면 그해 영등달에 비가 많이 오고, 두꺼운 솜 외투를 입은 영등이 오면 그해 영등달에 눈이 많이 오며, 간편한 차림이 영등이 오면 영등달에 날씨가 좋다. 

귀덕1리 현경애 사무장이 영등신화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집중해 듣는데, 현실과 대립하는 오묘함에 미소가 절로 인다. 딸로 사는 삶, 며느리로 사는 삶, 딸을 둔 어머니의 삶, 앞으로 며느리를 둘 어머니의 삶. 어디에도 편중할 수 없는 소중함이다. 

수필을 낭송하는 정민자 연극인.
수필을 낭송하는 정민자 연극인.

정민자 시낭송가가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김양희 작가의 수필을 낭독한다. 집중하며 감상하는데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라는 대목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크다. 
신학기만 되면 날씨는 왜 그리 변덕스러운지. 이제는 봄인가 하면 아니고, 이제는 진짜로 봄이겠지 하면 아니다. 그렇게 아이들 겨울 외투를 몇 번을 꺼냈다 넣었다 해야 진짜 봄이 왔다. 생각해 보니 이때가 영등달이다. 

관객과 함께하는 시 낭독으로 김원욱 시인의 ‘영등할망’이 준비되었다. 

‘큰바람 부는 날 하늘에 실금이 갈 것이다/ 벼락같은,/ 시작부터 역동적이다. 관객과 함께한 시 낭독은 모두 한목소리로 신화적 상상을 담아 낭독한다. 
 이른 시간부터 먼 길 달려왔다. 예술이 흐르는 길 바람난장이 아니었으면 와 보지 못할 곳이다. 행사장은 계절 같지 않은 온화함으로 일행을 맞이했고, 일찍 도착한 우리는 제주 영등할망 신화공원을 걸으며 분위기를 읽는다. 영등 신맞이 환영제의 무대인 듯하다. 

귀덕1리 복덕개 포구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행사 참여자 모습.
귀덕1리 복덕개 포구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행사 참여자 모습.

영등할망 왼쪽에는 영등대왕이 오른쪽에는 영등하르방 석상이 세워졌다.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모두를 포용할 것 같은 인자한 모습이다. 영등석상이 세워진 신화공원 돌담길을 걷는데, 바다가 마치 신화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이렇게 2023년 예술이 흐르는 길 바람난장의 두 번째 공연은 제주 영등할망 신화공원에서 마무리한다. 

※다음 바람난장은 2월 25일 절물 휴양림부근 민오름일대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사회=이정아
▲퍼포먼스=김정희, 한은경
▲음악=서란영, 이춘애
▲시낭송=강상훈, 김정희, 정민자
▲무용=박연술 제주연무용단(정옥남, 양은녕,   
          고성미, 박영신, 한은경)
▲그림=유창훈
▲사진=허영숙
▲영상=고성민
▲음향=장병일
▲해설=현경애
▲글=고여생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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