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앞에 찾아온 봄…버선발로 맞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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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복수초가 피면 봄은 그리움을 낳는다 (下)

무용공연 보며 참여자들 몰입
자연 속 무대에 올라 함께 소통
제주어 곁들인 해설을 들으며
숲을 더 친밀하게 접할 수 있어
지난달 25일 제주 절물휴양림 부근 민오름일대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참여자 모습.
지난달 25일 제주 절물휴양림 부근 민오름일대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참여자 모습.

아들이 아버지가 된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아주 잠깐,
천지간이 기우뚱거렸다​

폭설에 묻힌 산허리 어디쯤에
꼼지락거리는
복수초 꽃잎 한 점
꽁꽁 언 땅을 가만히 녹이고 있었으리​

햇살 톡톡 터트리며 오시는 봄을 따라온
새 생명의 이름
너의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 이종형 시인의 ‘생명’

시 낭송가인 김정희 바람난장 대표가 이종형 시인의 시를 낭송하는데 묵직한 울림통이 돼 나에게 되돌아온다. 
새 생명에게 붙여 줄 이름을 고심하는 시인의 마음이 내 안에서도 그대로 전해져 와 겨우내 묻어두었던 씨앗들이 고개를 내밀며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아들이 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일은 언제나 신비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햇살 톡톡 오시는 봄, 꽁꽁 언 땅을 가만가만 녹이는 복수초 꽃잎 한 점을 생각하면 봄은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아야지 싶다.

지난달 25일 열린 바람난장에서 제주연무용단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5일 열린 바람난장에서 제주연무용단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무용단의 박연술, 박진아님의 춤이 이어진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의 길을 기원하듯 고영열이 부르는 ‘나비의 꿈’ 가사에 눈을 감으니 섬세한 손짓 하나 눈짓 하나 소망을 담고 가사 그대로 너울너울 나비가 되고 너울너울 꽃잎처럼 춤을 춘다. 

관객들 모두 호흡을 정갈히 하고 우리 모두 사랑스러운 그대가 되어 숨죽이고 바라보는데 나만의 착각일까? 봄을 맞이하는 춤사위와 꽃향기 좇아가는 바람이 하늘에 닿아 금세 나비 한 마리 날아와 꿈을 들어줄 것 같다.

음악과 춤과 관객이 한 호흡이 돼 호젓한 숲길을 물들이자 춤을 추며 걸어온 예술이 흐르는 길에는 박수가 길게 이어진다. 

여운이 진해서일까? 김정희 대표가 즉석시를 낭송하는데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서로의 심정을 말해준다.

시낭송을 하고 있는 김정희 대표.
시낭송을 하고 있는 김정희 대표.

꽃머체가 대순가
나비 드는 여기가 어디인가
복수초 나오는 
바람꽃 나오는 
여기
나비 든다
봄인가 하고
여기
나비 날아든다
가뿐 날아와
맨발인가
버선발로 달려와 앉아
고개 숙여 봄을 보네
너와 나
바람 들듯 날아가네

-김정희의 ‘한라산 둘레길 따라’

즉석에서 한 편의 시를 써서 낭송하는 바람난장의 저력을 보며 감탄하는데 뒤이어 무지하게 떨린다며 첫인사를 건네는 유정숙님, 전자악기인 에어로폰으로 ‘봄처녀’를 연주하시는데 깜짝 놀랐다. 

신기하게도 귀에 쏙 박히면서 예전에 즐겨 불렀던 가사가 저절로 떠올라 흥얼거리게 된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신기한지 가던 길 멈추고 손뼉도 쳐주신다. 음악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관객들과 함께 이해인 수녀의 ‘봄편지’를 낭송했다. 답답한 실내에서 하는 시낭송이 아니다. 복수초가 피어 있는 자리, 변산바람꽃이 자리한 곳. 머지않아 노루귀도 고개 내미는 자리에서 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숲길에서 낭송하는 시. 모든 문장이 살아서 와닿는다. 그곳에 자리한 모든 이들과 함께 한목소리로 낭송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강은아 숲해설사.
강은아 숲해설사.

마지막 순서로 강은아 숲해설사님이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아 화산암반에 자리 잡은 나무들의 특성과 봄을 알리는 꽃 복수초에 관해 해설을 해주셨다. 복수초는 천남성처럼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신다. 나뭇잎에 가려지기 전에 종족 번식을 하기 위해 일찍 꽃을 피우는 머리가 똑똑한 식물임을 내세운다. 숲길을 걸을 적에는 작은 꽃들이 다치지 않게 인도로만 다녀 달라고 당부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꽃으로만 알고 있던 터라 차분한 해설과 중간중간 제주어를 곁들여 설명해 주시는데 한 층 더 깊은 지식을 갖고 숲과 친밀하게 접할 수 있었다. 모든 공연을 끝낸 후 숲을 나오는데 내내 허전해서 다시금 뒤돌아본다. 추운 날씨에 노루 꼬리 같은 짧은 햇살 받고 무리 지어 핀 복수초가 바람을 타고 다음을 기약하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다음 바람난장은 3월 11일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굴 4·3유적지 근처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사회=이혜정 ▲음악=우쿨향기.서란영, 유정숙 ▲시낭송=이정아, 김정희 ▲무용=박연술 제주연무용단(박연술, 박진아) ▲그림=홍진숙 ▲사진=허영숙 ▲영상=고성민 ▲음향=장병일 ▲해설=강은아 ▲글=조선희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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