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동굴 앞에서 우리들 눈물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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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랑쉬굴 (下)

4·3 현장이던 다랑쉬오름이 간직한 억울함과 쓸쓸함 전해져
슬픈 역사 담긴 시낭송 들으며 아픔 섞인 옛 기억 떠올려
애달피 들리는 노래와 악기 소리에 관객들 모두 하나가 돼
지난 11일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굴 4·3유적지 부근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참여자 모습.
지난 11일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굴 4·3유적지 부근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참여자 모습.

아침 일찍 다랑쉬오름에 올랐다. 정상에 와 있다. 여기에서 사방으로 솟은 오름들을 보노라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깊은 분화구를 내려다보면서는 가슴이 아리다. 저 분화구에는 별의별 눈물이 다 녹아있을 것이다. 다랑쉬오름은 수많은 오름 중에서 가장 큰 슬픔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동족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간 현장을 똑똑히 지켜본 오름이기 때문이다.

다랑쉬오름을 내려와 ‘잃어버린 다랑쉬 마을’ 표지석 앞을 지난다. 전에는 팽나무가 곁에 있어 든든했는데 서너 해 전에 갑자기 죽어버렸다. 무자년의 숱한 주검들과 겹쳐 씁쓸하다. 마을도 사람도 통째로 사라져 버린 현장에는 집마다 키우던 솜대(질긴 대나무)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씁쓸하다.

바람난장 행사가 열리는 다랑쉬굴 앞이다. 커다란 바윗돌이 동굴 입구를 가로막아 눈살이 찌푸려진다. 무자년 겨울, 토벌대가 불을 지펴 숨어있던 주민들을 질식시켜 죽인 곳이다. 다음날 동굴에 몰래 들어가 시신을 정리한 주민에 의하면 어린아이까지 땅에 코를 박고 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단다. 

바람난장 김정희 대표의 인사말이 인상적이다. “아픔이 눈에 보이고, 슬픔이 온몸으로 들어와 숨결이 느껴지고….” 청량한 빛이 감돌던 하늘에 검은 구름이 깔리면서 날씨가 우중충하다. 억새도 조금씩 흔들린다. 4·3 항쟁에서 무참히 죽은 영령들이 서성이는 걸까.

시를 낭송하는 이혜정, 장순자 시놀이팀.
시를 낭송하는 이혜정, 장순자 시놀이팀.

시놀이팀에서 이혜정·장순자 님이 ‘다랑쉬오름의 아침’을 낭송한다. 

서성이는 영혼들 
화해의 손짓으로 파도를 끌어모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다랑쉬오름
쉬쉬 
오늘도 말 없는 
바람을 앞세우고 있다 

-홍기표, ‘다랑쉬오름의 아침’ 일부

‘쉬쉬, 오늘도 말 없는 바람을 앞세우고 있다’ 가슴이 짠하다. 이 얼마나 슬프고 저린 역사인가. 문득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눈앞에 그려진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가, 4·3에 관해서 심드렁하게 물어봤다가 화를 벌컥 내는 바람에 추물락했다. “입 쫌쫌라! 잡혀간다.” 

이마리아 성악가.
이마리아 성악가.

성악가 이마리아님이 ‘그리워’를 열창하고 있다. 동백꽃잎처럼 붉은 드레스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 뵈네/ 들굴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절절하다. 이 노래가 이토록 애달픈 연가였나. 동백 꽃잎 하나가 사르르 날아오르고 있다. 노래는 그쳤으나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들리는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멜로디가 더 아름답다.’ 영국 시인 키츠의 말이 유독 실감 나는 오늘이다.

색소폰 소리가 초원으로 퍼진다. 강섭근님이 연주하는 ‘꽃밭에서’다.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색소폰 소리에 맞춰 나직한 노랫소리가 입에서 입으로 흐르고 있다. 악기와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어 더없이 아름답다. 저마다 다른 파동을 가졌지만 진한 감정 앞에서는 하나로 녹아드나 보다. 

서란영 팬플루트 연주가도 무대에 섰다.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이어 ‘못다핀 꽃 한송이’도 참 어울린다. 선곡을 어쩜 이렇게 잘들 하는지 매번 귀가 즐겁다. 귀가 좋아하니 마음도 좋아한다. 사람들이 환하게 피어나고 있다. 소리가 먼저일까, 마음이 먼저일까. 악기가 사람을 움직였나, 사람이 악기를 움직였나. 

마지막으로 관객 시 차례다. 

억새 뿌리에 몸을 감춘 채
살아야,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 있었단다.
잎사귀 같은 서방, 산으로 가 소식 끊기고 
돌배기 딸년의 울음소리 데리고 찾아 나선 길, 
어디서 시커먼 그림자 서넛이 
휘릭 바람을 타고 지나칠 때 
아이의 울음 그러 막으며 억새밭에 납작하게 엎드린 목숨, 
이제나저제나 수군거리는 소리 잦아들까.
틀어막은 입에서 새던 가느다란 숨소리마저 잦아들고 
붉게 상기한 볼, 딸아이 가슴을 텅텅 치며 
목 놓아 부르던 ᄄᆞᆯ아이 이름,
야고야 야고 야고,
핏빛 물든 억새 밑동에 몰래 묻어야 했던 분홍 종소리, 
오늘 예서 듣는다.
서울 복판 하늘공원 발그레 울려온다.

-변종태, ‘하늘공원 야고’ 일부

시를 읽어내려가다가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다. 억새 뒤에 숨어 꽃대마저 올리지 못하고 움츠러들어 피어난 ‘산자고’도 몸을 파르르 떤다. 

고연숙 작가.
고연숙 작가.

안개가 피어오르는 다랑쉬오름을 올려다본다. 부디 저 다랑쉬오름이 영원하기를. 
<글=고연숙 작가>

※다음 바람난장은 3월 25일 토요일 오전 11시 서귀포 칠십리 시비공원에서 있습니다.

▲사회=이정아 
▲무용=박연술 연무용단(박연술,정옥남,고성미,박영신,한은경)
▲낭송=김정희, 이혜정, 장순자
▲퍼포먼스 낭독=강상훈, 정민자
▲노래=이마리아
▲음악=서란영, 강섭근
▲사진=허영숙
▲영상=고성민
▲음향=장병일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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