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잎도 함성을 지르며 봄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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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서귀포 칠십리, 그리움의 거리 (上)

섬에서 태어난 사람은 신들의 보살핌 받으며 바다가 삶터가 돼
산책하는 행인들도 모두 관객이 돼 일상 속 휴식과 즐거움 느껴
지난 25일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참여자 모습.
지난 25일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참여자 모습.

봄이다. 참빗살나무 가지에 새잎이 돋았다. 일제히 함성을 지르듯 나뭇가지의 살갗을 뚫고 나와 잔망스레 웃는다. 여린 잎이 바람에 날고 싶다는 듯이 바동댄다. 벚꽃이 연분홍빛으로 피어 화사하다. 봄까치꽃도 무더기로 피었다. 봄날 하늘빛을 닮은 꽃이 자잘한 잎으로 재잘대고 있다. 생명이 꿈틀대는 삼월이다. 봄이 되면 땅도 하늘도 바람도 사람들도 들썩인다.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고 어디로든 나가보라고 부추긴다. 

서귀포문인협회 정영자 회장.
서귀포문인협회 정영자 회장.

3월 25일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서 바람난장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서귀포 문인협회와 함께했다. 서귀포문협 정영자 회장이 간단한 인사말을 하고 오승철 시인의 ‘서귀포 바다’를 낭송한다. “친구여/ 우리 비록/ 등 돌려 산다 해도/ 서귀포 칠십리/ 바닷길은 함께 가자/ 가을날 귤처럼 타는/ 저 바다를 어쩌겠나” 

꽃이 활짝 핀 벚나무가 먼 곳에 시선을 두고 관객들과 함께 시를 듣는다. 지나가던 여행자도 멈춰 서서 듣는다. 서귀포 바다는 어디로 흘러갈까. 바닷길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 너머에 닿지 않을까. 시인은 개인의 이야기 너머에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도 가 닿아있음을 짐작해본다. 등 돌려 살지만 노을지는 바닷길을 함께 가자는 시인의 목소리가 담대하게 느껴진다. 

시놀이팀 이정아님이 ‘유자꽃 피는 마을’을 낭송한다. 

내 소년의 마을엔
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
유자꽃 꽃잎 사이로
파아란 바다가 촐랑이고,
바다 위론 똑딱선이 미끄러지이다.
툇마루 위에 유자꽃 꽃잎인 듯 
백발을 인 조모님이 조을고 
내 소년도 오롯 잠이 들면,
보오보오 연락선의 노래조차도
갈매기들의 나래에 묻어 
이 마을에 오더이다. 
보오보오 연락선이 한소절 울 때마다
떨어지는 유자꽃.
유자꽃잎이 울고만 싶더이다. 
유자꽃잎이 섧기만 하더이다. 

-김광협, ‘유자꽃 피는 마을’의 전문

제주는 귤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귤꽃 향기로 동네 전체가 향기롭다. 특히 밤에 맡는 꽃향기는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오월 햇살에 백발을 인 조모님이 졸고 있는 모습과 연락선의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롯 잠드는 소년의 모습이 정겹다. 연락선에 실려 떠난 것들은 무엇이었나.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순수했던 날들,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면 나도 울고만 싶다. 울컥하다.

제주연무용단이 꽃으로 피어나는 제주를 담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제주연무용단이 꽃으로 피어나는 제주를 담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제주연무용단의 공연이 펼쳐진다. 정옥남, 양은녕, 고성민, 박영신, 한은경 다섯 명의 여신이 무대로 들어선다. 춤에 꽃으로 피어나는 제주를 담았다고 한다. 한은경님은 ‘제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여러 신이 보살펴준다. 생명의 탄생을 관장하는 삼승할망, 바람의 신 영등할망, 축복의 신 설문대할망 이렇듯 제주의 아이는 제주 신들의 보살핌으로 바람과 꽃으로 피어난다.’라며 춤의 의미를 전한다. 흰 무명천을 든 삼승할망과 파란 부채와 붉은 동백을 든 영등할망과 설문대할망이다. 춤사위가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되고 노래가 된다. 꽃이 피고 바람이 인다. 

‘웡이자랑 웡이자랑’은 구덕을 흥글엉 애기 재우는 소리이다. 밭일하랴, 물질하랴, 살림하랴, 애기 키우랴, 고단한 삶 속에서도 어머니들은 노랫말에 마음을 실었다. 아이들이 무사히 커 주기를 제주의 신들에게 빌고 또 빌었다. 

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바다가 놀이터이며 삶터가 된다. 바람을 마주하고 사는 건 숙명이다. 섬은 바다를 낳고 바다는 바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대금을 연주하는 정우준 연주가.
대금을 연주하는 정우준 연주가.

갓대금으로 불러 달라는 정우준님이 대금을 연주한다. 갓과 한복을 차려입고 대금을 연주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이어 ‘봄이 온다면’을 연주한다. 봄의 길목에서 대금 연주로 봄맞이를 한다. 마침 흐린 날에 묵직한 대금 소리가 어우러져 관객 모두가 즐거운 모습이다. 바람난장은 시와 노래와 무용과 연주로 제주를 노래하고 있다. 

칠십리시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올레 7코스를 걷는 사람들도 많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관객이 돼 시와 음악을 듣고 춤과 연주를 즐겼다. 공연을 하는 이들도 공연을 보는 이들도 함께 즐기는 시간이었다. 바람난장의 이야기가 잠시나마 그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이 됐기를 바란다. 

<글=강순지 작가>

▲사회=이혜정
▲무용=박연술 제주연무용단 정옥남, 양은녕,
          고성민, 박영신, 한은경
▲시낭송=정영자, 이정아, 김정희
▲음악=서란영, 갓대금(정우준)
▲사진=김종석
▲음향=장병일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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