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닿을 그리움의 거리 칠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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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서귀포 칠십리, 그리움의 거리 (下)

산책길 돌에 새겨진 시와 노래 가사 보며 마음의 여유 느껴
봄 길잡이 목련처럼 강하고 우아하며 향기로운 사람 되고파
지난달 25일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서 바람난장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서귀포를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서귀포를 주제로 한 시와 노래 가사를 돌에 새겨 놓았다. 유창훈 作. 시인 오승철님을 그리다.
지난달 25일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서 바람난장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서귀포를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서귀포를 주제로 한 시와 노래 가사를 돌에 새겨 놓았다. 유창훈 作. 시인 오승철님을 그리다.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는 시비(詩碑)가 많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서귀포, 서귀포를 주제로 한 시와 노래 가사를 돌에 새겨 놓았다. 정지용의 ‘백록담’, 김춘수의 ‘이중섭’, 정완영의 ‘바람’, 오승철의 ‘서귀포 바다’, 김광협의 ‘서귀포’를 읽는다. 산책길에 시를 만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좋다. 

바람난장 초대 회장인 오승철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를 출간했다. 김정희 바람난장 회장이 축하 시낭송을 한다. 

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다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

그만둘 때 지났다고 등 떠밀진 말게나
반도의 해안선 따라 
바다 밑은 다 봤다는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어머니 숨비소리 
대물림 끊긴 바다
숭고한 제주 바당에 거수경례하고 싶다

-오승철, ‘다 떠난 바다에 경례’ 전문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다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불턱의 할망들이 퇴장한다. 한때는 상군 해녀였던 그녀들, 물질 하나로 온 식구를 먹여 살렸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 그녀들은 늙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났다. 바다에서 해녀의 숨비소리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 대물림이 끊어진 쓸쓸한 바다, 숭고한 바다에 시인을 따라 나도 예를 갖추고 싶어진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 “고구려 시대에도 해녀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제 대물리며 사천 년간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하고 있다.”며 “저 텅 빈 바다에 무엇을 바칠까 하다가 그냥 거수경례나 하고 돌아간다.”고 남겼다.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최희수.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최희수.

칠십리시공원에 바람난장을 풀어놓았다. 최희수님이 ‘봄날은 간다’를 부른다. 동백꽃처럼 붉은 셔츠를 입고 짧은 커트를 한 그녀, 그녀의 여리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나무와 꽃들 사이로 퍼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고/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노래 ‘봄날은 간다’는 한국 전쟁이 가져온 가족의 이별과 여인의 한을 봄날의 풍경과 대비시켜 만든 노래라고 한다. 오늘 다시 들어보니 노랫말과 곡조가 애달프고 가슴이 시리다. 연분홍 치마 휘날리는 봄날, 알뜰한 맹세와 실없는 기약에 우리의 봄날은 간다. 젊음과 사랑과 인생이 흘러간다. 

서란영의 팬플루트 연주.
서란영의 팬플루트 연주.

서란영님이 팬플루트 연주 차례다. 가곡 ‘목련화’에 이어 아바의 노래 ‘치키티타(Chiquitita)’ 두 곡을 연주한다. 울타리 넘어 고개 내민 하얀 목련화가 눈에 선하다.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우아하고 향기롭다. 이 봄, 목련을 닮은 강하면서도 우아하고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치키티타는 스페인어로 ‘어린 소녀’를 의미하는데 가사는 어린 소녀를 위로하는 내용이다. ‘You'll be dancing once again and the pain will end/ You will have no time for grieving’

‘다시 한번 춤을 추게 될거야, 고통도 끝날거고/ 슬퍼할 시간도 없을거야’

팬플루트의 선율이 듣는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하다. 

관객시 차례에서 참가자들이 한 소절씩 시를 낭송하고 있다.
관객시 차례에서 참가자들이 한 소절씩 시를 낭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관객시 차례다. 참가자들이 한 소절씩 읽는다. 

“그게 어디 숫자여?/ 부르고픈 이름이지/ 백 리는 너무 멀고/ 오십 리는 좀 짧다고?/ ‘서귀포 칠십 리’란 말 내뱉고 간 사람아/ 어디서 어디까질까, 서귀포 칠십리는/ 섬들을 한바퀴 도는 그 거리가 그쯤이겠고/ 이 땅의 그리움 찾아 나선 길도 칠십 리/ 그래! 어떻던가 거기에는 있던가/ 삼팔선 넘어서면 칠십 리 더냐, 천 리 더냐/ 사람아, 칠십리란 말 흘리고 간 사람아” -오승철, ‘서귀포 칠십리’-‘서귀포 칠십리’란 노래를 작사한 조명암에 대해 전문

서귀포 칠십리, 얼마만 한 거릴까 궁금했다. 1리가 0.393km, 환산해보면 칠십 리는 27.5km쯤이다. 어디서부터 어디 까질까 생각했다. ‘섬들을 한바퀴 도는 그 거리가 그쯤이겠고/이 땅의 그리움을 찾아 나선 길도 칠십 리’ ‘삼팔선 넘어서면 칠십 리더냐, 천 리 더냐’ ‘그게 어디 숫자더냐?’ 서귀포 칠십 리, 어딘가에 닿을 그리움의 거리다.

삼월, 바람난장의 열어놓은 길로 봄이 들고 있다.

(글=강순지 작가)

※다음 바람난장은 4월 8일 가시리 유채꽃 프라자 꽃머체에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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