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팝콘처럼 펑, 펑 터지는 이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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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채꽃프라자 (上)

유채꽃이 출렁이는 난장 무대서
시낭송과 노랫소리가 울려퍼져
악기 선율에 집중하는 오름 보며
낭만으로 피어날 가을 억새 기대
지난 8일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프라자 꽃머체에서 바람난장이 펼쳐졌다. 홍진숙 作. 봄바람.
지난 8일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프라자 꽃머체에서 바람난장이 펼쳐졌다. 홍진숙 作. 봄바람.

유채꽃길을 달린다. 양쪽으로 늘어서 흐르는 노랑 물결이 뒤로 뒤로 자꾸만 흘러간다. 끝없이 흐를 것만 같은 녹산로 유채꽃길을 달리다가 나도 모르게 팝콘처럼 터지는 감탄사. 제주의 봄을 자랑하라면 서슴지 않고 가시리 녹산로의 유채꽃길을 첫째로 말하고 싶다.

오늘 바람난장은 가시리 유채꽃프라자에서 펼쳐졌다. 큰사슴이오름을 뒤로하고 유채꽃 장다리꽃이 호수 되어 출렁이는 무대에서 어우러지는 한마당이다. 큰사슴이오름 끝자락으로 소록산이 ‘저도 여기 있답니다’라며 고개를 내민다.

김정희 대표와 시놀이팀이 김정미 시인의 ‘사월의 행기머체’를 낭송하고 있다.
김정희 대표와 시놀이팀이 김정미 시인의 ‘사월의 행기머체’를 낭송하고 있다.

김정희 바람난장 대표와 시놀이팀(이정아, 이혜정, 장순자)이 김정미 시인의 ‘사월의 행기머체’를 들고나와 보따리를 풀었다. 난장의 무대가 펼쳐진다.

세상 문이 열리면서
기나긴 세월을 등지고 꿈에서  깨어났어
동백나무 벚나무를 품은 채
갑마장길 어귀에 자리를 풀어놓았지

툭 치면 꽃나무 머리에 이고 
하늘 위로 솟을 것 같은 돌무더기의 민낯에는
특별한 태생의 기운이 들어있어

무성한 나뭇가지 흔들며 공중부양하는 참새도 
바람과 맞서는 풍차도
어제를 풀어내기 위한 날갯짓

말발굽 소리 들으며
오고 가는 이들의 눈길만 스쳐도
윤진 하루가 가득 차오르고

놋그릇에 정수 떠 놓고 아버지 머리맡에서 두 손 모았던
할머니의 마르지 않은 이야기가 가물가물 피어오르지

돌무더기 아래로
동백꽃이 눈부시게 수놓을 때

무심했던 모진날들을 훌훌 털어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마주한다지
 
-김정미, ‘행기머체’ 전문


행기머체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하용암돔이며 동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행기란 녹그릇에 떠 놓은 물을 뜻하고, 머체는 돌무더기를 일컫는 제주어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머체라는 이름에는 정감이 가득 느껴진다.

시인은 행기머체라는 이름에서 할머니의 정성을 연상했던가 보다. ‘놋그릇에 정수 떠 놓고 아버지 머리맡에서 두 손 모았던/ 할머니의 마르지 않은 이야기가 가물가물 피어오르지’ 할머니는 아들의 무탈을 위해, 아니면 역사의 어두운 소용돌이에 휘말려 소식 없는 남편을 위해 빌었으리라. 정화수를 떠 놓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래를 부르는 이성진.
노래를 부르는 이성진.

바람난장이라고 바람도 빠질 수 없다며 자리를 차지했다. 꽃물결이 힘차게 출렁이는 가운데서 김정희 대표의 인사말이 이어지고 이성진 님의 멋진 음성으로 ‘님의 향기’와 ‘비가 온다’를 노래한다. 난장에 잔잔한 흥을 불러들인다. 유채꽃 장다리꽃도 서로 손을 맞잡고 리듬 따라 몸을 흔든다.

성동경의 색소폰 연주.
성동경의 색소폰 연주.

성동경 님의 색소폰 연주가 시작된다.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꽃밭에서’와 ‘넬라 판타지아’가 깃털을 단 듯 높이 날아오르며 꽃바람을 일으킨다. 큰사슴이오름과 마주하고 멀찍이 나앉은 따라비오름 정상까지 고운 음색이 꽃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다.

따라비오름은 억새꽃으로 유명하다. 녹산로를 따라, 그리고 유채꽃프라자와 갑마장길에서 유채꽃으로 화사한 봄을 시작했다면 가을엔 따라비오름에서 성숙해진 멋을 즐겨볼 일이다. 오늘 꽃바람을 타고 울려 퍼지는 선율에 오름도 귀를 기울여 즐기고 있으니 올가을 억새는 더욱 깊은 낭만으로 피어날 것임을 예감한다.  

여운을 가라앉히며 김정희 대표의 시낭송이 이어진다.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전문


꽃이 핀다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 하물며 내게 있어 특별한 그대가 피어나는데 어찌 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유채꽃밭 가운데서 한쌍의 예비 부부가 웨딩 촬영을 한다. 유채꽃도 예쁘지만,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예비신부와 그녀의 손을 맞잡은 예비신랑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는 중이다. 가슴 떨리게 사랑하고 뜨겁게 피어날 그들에게도 살며시 축복의 마음을 보내본다.

(글=좌여순 작가)

▲사회=이정아 ▲사진=허영숙 ▲음향=장병일  ▲시낭송=김정희, 시놀이팀 ▲노래=이성진 ▲음악=성동경, 서란영 ▲그림=홍진숙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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