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의 마음으로 순수한 세상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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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채꽃프라자 (下)

꽃물결 넘실대는 가시리…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 갖게 돼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리듯 일상 속 꽃보다 아름다운 기쁨 기대
지난 8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프라자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참여자 단체사진.
지난 8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프라자에서 진행한 바람난장 참여자 단체사진.

유채꽃 강이 흐른다. 녹산로를 따라 가시리로 길게 이어진 유채꽃길을 따라 흐르다 보면 오른쪽에 조랑말체험장이 나온다. 거기서 조금 들어가면 유채꽃 광장이 호수로 펼쳐진다. 녹산로를 따라 달려온 유채꽃 강물이 여기서 만나 호수를 이룬 듯하다.

바람난장은 그보다 못미처 왼쪽으로 들어간 ‘유채꽃프라자’에서 펼쳐졌다. 유채꽃 광장보다는 작은 꽃호수다. 유채꽃 장다리꽃이 어우러져 넘실대며 꽃물결로 바람난장을 환영한다.

이정아가 사회를 보고 있다.
이정아가 사회를 보고 있다.

이정아의 진행에 따라 김정희 바람난장 대표와 시놀이팀(이혜정, 장순자)이 박기섭 시인의 시조 ‘가시’를 낭송한다.

그냥저냥 몇 년 세월 덤으로나 준 것 말고
내 열 살 적 눈 맞춰 둔 소꿉 색시 데려다가
한라산 중산간쯤에 돌솥 하나를 건다면?
하 기다린 죗값으로 가시 울을 친다 해도
겹겹 잣담 밖에 불잉걸을 둔다 해도
다저녁 돌아온 봄빛에 겨운 몸을 맡길 뿐
내 안의 먹뻐꾸기 물고 갔다 물고 온 것,
드러난 실밥이면 드러난 채 그냥 두고
그 남루 그 적막 받아 가시(加時)에나 가서 살리

-박기섭 시인의 ‘가시(加時)’ 전문


가시리라는 마을 이름만으로 위리안치가 연상되기도 했을 터다. ‘가시 울을 친다 해도/ 겹겹 잣담 밖에 불잉걸을 둔다 해도’ ‘열 살 적 눈 맞춰 둔 소꿉 색시’와 함께라면 기꺼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순정 어린 상상을 했던 모양이다. 순수한 마음과 아끼는 마음을 가진 둘이서 함께 한다면 그깟 위리안치, 그깟 겹겹 불잉걸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요즘 가시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을 가두어 기르던 옛날의 척박한 곳이 아니다. 가시리에는 굳이 소꿉 색시를 데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시인에게 살짝 귀띔해 주어야 할까. 벚꽃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녹산로를 따라 가시리로 들어가는 길, 그 자체가 분홍 저고리에 노랑 치마를 입은 화사한 색시를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팬플루트 연주를 하는 서란영.
팬플루트 연주를 하는 서란영.

소꿉 색시를 맞이하려는 듯 서란영의 팬플루트 연주로 ‘봄처녀’와 ‘바람의 빛깔’이 이어진다. 청아한 연주가 꽃향기를 날리며 유채꽃 노랑 바람을 일으킨다. 병아리 같고 어린이 같은 노란색은 태양의 색이라고도 한다.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노랫말처럼 어린이같이 순수한 노랑의 마음이면 편견 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혀 태양처럼 밝은 세상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흐렸다 개었다
그래도 꽃같이 산다고
꽃을 찍었네

따사로운 하늘 빛에
돌아볼 내일을 터트리네

이리봐도
저리봐도
초록잎에 나비를 부르는 
그윽한 눈빛

발길따라
꽃물이 젖어드는
꽃길만 가시리

-김정미 ‘꽃길만 가시리’ 전문

관객과 함께하는 시낭송에 김정미 시인도 함께 참여했다. 시인은 가시리 태생이다. 고향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나온 시상이었을까. 뾰족함 같은 건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니, 곱고 여리기만 하다. ‘발길따라/ 꽃물이 젖어드는/ 꽃길만 가시리’ 꽃잎이 흐드러진 길, 고운 상상을 하게 되는 시다.

다음 관객시로 김정숙 시인의 ‘연노랑 시간의 계보’를 풀어 놓는다.

봄날
떠나 온 땅에 
봄은 그냥 있었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날아오르는 꿈을 꿀 때
해맑게 이끼를 입은 안좌름※이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고
긴 긴 기다림은 여닫이도 잊었는지
헌 집에 꽃잎이 붐벼
시간을 놓쳐 버렸다

닳아진 자리에 
돋는 정겨움처럼
묵은 동네 거느리고 환한 
벚나무 아래
딸내미 배웅을 하던
여자가 서
있었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안좌동의 옛 이름

-김정숙 ‘연노랑 시간의 계보’ 전문

관객시 낭송 모습.
관객시 낭송 모습.

이제 바람난장이 막을 내릴 때가 됐다. 벚꽃은 이미 다 떨어졌고, 호수를 이룬 유채꽃들도 차츰 화려함을 내려놓으리. 하지만 꽃이 진다고 아쉬워 말자. 꽃은 져야 한다. 꽃이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가 있을까. 꽃 진 자리마다 알알이 열매가 여물어가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리라.

이제는 내면의 시간이다. 화양연화의 시절이 가고 주름이 는다고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알알이 열매가 여물어가듯 우리에게도 차곡차곡 영글어가는 열매가 있을 것이다.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과 양분을 길어 올리고 빛을 모으느라 바쁘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채우다 보면 우리의 내면에 영글어가는 열매에서 꽃보다 더 아름다운 기쁨을 얻을 수 있으리.

(글=좌여순 작가)

 

▲사회=이정아 
▲사진=허영숙 
▲음향=장병일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이혜정·이정아·장순자)
▲노래=이성진 
▲음악=성동경, 서란영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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