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녹음이 햇살을 마중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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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백동산을 설레게 하다 (下)

원시 자연과 아픔 품은 곶자왈서
시낭송·연주 감상하며 생각에 잠겨
즉석 흥으로 난장의 여운 이어져
지난달 12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열린 동백동산 생태문화축제에서 바람난장이 열렸다. 이날 자연 속에서 참여자와 방문객들이 하나가 돼 무대를 즐겼다. 유창훈 作. 동백동산.
지난달 12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열린 동백동산 생태문화축제에서 바람난장이 열렸다. 이날 자연 속에서 참여자와 방문객들이 하나가 돼 무대를 즐겼다. 유창훈 作. 동백동산.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품은 동백동산 일원은 온통 연둣빛으로 물들어 있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수줍은 눈물이 곶자왈에 촉촉이 내려앉을 것만 같다. 아직은 설은 상큼함이 아침에 먹은 열무김치의 아삭함을 닮았다. 구름에 가려졌던 싱그러움이 화사한 햇살을 받으니 ‘나, 이른 여름 마중나왔소.’ 한다. 머지않아 선흘 곶자왈은 여름의 절정 진초록으로 농익을 것이다. 다른 듯 서로 어우러져 본래의 자연과 아픔을 오롯이 품은 곶자왈이다.

단호했던 뒷모습을 새겨읽지 못했구나
덤덤히 스쳐 보낸 날 것의 시간으로
날아든 너의 부음은 어찌 이리 가벼운가

깨문 입술처럼 피 흘리며 지는 동백
가다 말고 돌아본다 지상의 어스름 녘 
살아 낸 생의 뭉치가 어찌하여 가여운가

혹한 다 견뎌내고 목울대 적신 봄날
헐겁게 떼어 붙힌 인력만 파르라니
못 다 쓴 종장 한 마디 어찌 두고 가시는가

-이승은의 ‘선흘 곶자왈’ 전문

늘 웃음을 달고 다니는 김정희 바람난장 대표이지만, 이번 무대는 숙연하다. ‘깨문 입술처럼 피 흘리며 지는 동백’, ‘못 다 쓴 종장 한 마디 어찌 두고 가시는가’ 시대의 아픔을 생각하니 먹먹하다. 4‧3의 아픔을 간직한 선흘 곶자왈, 슬픈 역사로 기억될 일이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강섭근.
색소폰을 연주하는 강섭근.

사회자의 소개만으로도 방금 낭송한 시의 여운이 무뎌지듯 흐릿해진다. 익숙한 선곡에 마음이 먼저 설렜다. 강섭근 색소폰 연주자가 ‘그리운 금강산’과 ‘향수’를 들려준다. 음색의 강약 조절과 곡의 흐름을 부드럽게 이어가는 연주에 조용히 눈을 감고 감상한다. 노래 가사는 묻어두고 오롯이 금강산의 웅장함과 경이로움만 마음에 담아 본다.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좇겨 온 실구름 일 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
                                                                                   
-정지용의 ‘백록담’ 마지막 연

김정희 대표와 시놀이팀이 시낭송을 하고 있다.
김정희 대표와 시놀이팀이 시낭송을 하고 있다.

초록의 계절은 계절인가 보다. 의상도 소품도 초록색이다. 퍼포먼스가 여름을 준비하는 한라산 풍경이 연상된다. 김정희와 시놀이 팀이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 전문을 낭독한다. 백록담은 정시용 시인이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본 풍경과 정상에서의 신비로움을 표현했다. 한라산 등반의 절정에 다리가 불구가 될 정도로 고단했지만, 정지용 시인은 백록담에 비친 국수 가락 같은 실구름을 읽어내는 시 세계를 가졌다. 그리고 자연과 일체 되어 스스로 적적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자 한 것처럼. 

전병규·현희순의 소금 연주.
전병규·현희순의 소금 연주.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에서 느껴졌던 감성이 전병규, 현희순 님의 소금 연주로 이어진다. 연주곡은 ‘서편제-소리길’과 ‘가을’이다.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유봉일가가 당리 황톳길을 내려오며 진도 아리랑을 부르던 장면이 연상된다. 영화 ‘서편제’를 보며 우리의 전통 가락이 감동으로 다가왔었는데, 바람난장 소금 공연 서편제-소리길 연주로 그때의 감흥이 되살아난다. 

관객 시로 조선희 시인의 ‘자리돔의 궤적’을 낭독한다. 이맘때면 자리돔이 한창이라 자리물회 맛집 탐방을 다녔는데, 지구 온난화로 자리돔이 귀해졌다. 지금은 자리돔이 남해에서 잡힌다는 보도를 접하기도 한다. 이러다 제주 토속 음식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어쨌든 자리물회 먹으려 비행기 타는 일은 없었으면….

바람난장은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다. 시나리오 없는 즉석 흥으로 이어진다. 객석 관객이 시낭송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시 낭송과 노래를 자청해 흥을 북돋우니 방문객과 지역 주민이 함께 어울리며 하나가 된다. 무대를 중심으로 체험 부스가 운영되고 있어 부스에서는 자유롭게 체험을 즐기고 중앙에서는 신명 한마당이 펼쳐졌다. 즉석 공연, 드론 카메라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진정 예술의 흐르는 길 바람난장이다.(글=고여생)

 

▲사회자=김정희 ▲노래=이마리아 ▲무용=박연술 제주연무용단(정옥남, 박영신, 고성미, 박진아) ▲연주=갓대금, 전병규, 현희순 ▲시낭송=김정희, 이정아, 장순자 ▲색소폰=강섭근 ▲그림=유창훈 ▲사진=허영숙 ▲영상=김종석 ▲총감독=김정희

※다음 바람난장은 6월 10일 오전 11시 궷물오름에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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