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라 꽃잎들이 유월을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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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산수국이 피는 유월(上)

푸른 옷 입고 하는 시낭송에
산수국 계절이 왔음을 느껴  
바람 따라 흘러가는 선율에 
다 함께 사랑과 격려 받게 돼
지난 10일 제주시 애월읍 궷물오름에서 열 번째 바람난장이 열린 가운데 행사 참여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0일 제주시 애월읍 궷물오름에서 열 번째 바람난장이 열린 가운데 행사 참여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제주시 애월읍 궷물오름을 향해 걷는다. 유월의 푸르름이 초록빛 치마폭으로 오름을 감싸고 있다. 남실바람이 오름 등성이를 앞서 오른다. 소나무와 잡목들 사이를 숨바꼭질하던 바람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장난스레 흔든다. 나뭇잎이 하늘을 무대로 춤을 춘다.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다.

오름의 ‘궷물’이라는 이름은 궤(땅속으로 패인 바위굴)에서 샘물이 솟아난다는 데서 유래한다. 근래까지 이곳에서 소와 말을 방목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름 정상에서는 음력 7월 보름에 무사 방목을 기원하는 백중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테우리들이 다녔을 것으로 보이는 오솔길이 이제는 오름을 탐방하는 사람들을 위해 반듯하게 포장됐다. 그 길 위로 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혜정 사회자가 행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혜정 사회자가 행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오름 자락에서 작은 공연이 열린다. 6월 10일 궷물오름에서 바람난장이 열 번째 난장을 풀어놓았다. 사회를 맡은 이혜정 님이 행사 시작을 알렸다. 김정희 바람난장 대표가 행사에 참여한 작가들을 소개한다. 탐방객들에게 바람난장을 소개하며 행사에 함께하시길 권한다. 산수국 꽃잎 같은 파란 원피스를 입은 김정희와 시놀이 팀이 시낭송을 한다.

장마철엔 은연중 날 피하는 길이 있다.
한라산 동쪽능선 삼의오름 채 못 미처 
한 사발 배고픈 수국 
인광(燐光)을 품고 있다. 

그런 길. 그런 오후엔 빙초산 냄새가 난다.
갓 스물에 세상 뜬 주근깨투성이 그 애 
서늘히 등짝 후린다, 속수무책 청보라로. 

지금 내 나이쯤 아버지도 어찌 못한 
그래, 사촌이랄지 아니면 남남이랄지 
어쩌면 가문의 숙명, 목젖 걸린 가시 같은 

도채비꽃이라 한다, 그것도 낮 도채비 
오뉴월 장맛비가 널 그렇게 홀렸구나 
이 땅에 종자 하나도 
못 거둔 저 무성화(無性花)야. 

-문순자, ‘산수국’의 전문

산수국은 야생적이면서도 청초한 느낌을 준다. 산에 난다고 산수국인데 요즘은 화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헛꽃과 열매가 열리는 참꽃이 있다. 헛꽃은 벌과 나비를 유인한다. 헛꽃의 꽃잎은 푸르거나 붉은 흰색을 띤다. 참꽃은 푸른 보라색이다. 푸른 꽃잎이 인광(燐光)을 떠올리게 해서일까. 산수국은 ‘도채비꽃’이라고도 한다. 

문순자 시인은 청보라 산수국이 속수무책으로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며 오뉴월 장맛비가 홀려 피었다고 한다. 목젖에 걸린 가시 같은 가슴 아픈 이야기가 채 피지 않은 꽃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팬플루트를 연주하는 서란영.
팬플루트를 연주하는 서란영.

서란영님이 팬플루트로 ‘The Power Of Love’를 연주한다. 팬플루트 선율이 바람을 따라 나뭇잎을 타고 흐른다. 관객은 몸으로 리듬을 탄다. 고단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연주를 듣는다. “때론 내가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지만/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하지 말아요./난 항상 당신 곁에 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소한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살아갈 힘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며 다독인다. 시와 음악과 춤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람들과 함께한다.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좋은 시간이다. 

황재성의 색소폰 연주 모습.
황재성의 색소폰 연주 모습.

황재성님이 색소폰으로 ‘Over The Rainbow’ 연주한다. “무지개 저쪽 어딘가 하늘은 푸르고/그대가 감히 꿈꾸었던 꿈들이/정말로 이루어질 거예요.” “모든 괴로움이 레몬 사탕처럼 녹아내리는 곳” 연주를 들으며 나의 순수함은 언제 잃어버렸을까 궁금해진다. 산책길에 인동초꽃이 넝쿨로 피어 있었다. 인동초 꽃을 따서 꽁무니를 깨물어 빨았더니 단물이 나온다. 인동초 꽃의 단물을 빨아 먹던 옛 생각에 젖는다. 사소한 것에도 행복하고 재미를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자라면서 커다랗고 의미 있는 것들을 쫓느라 작고 소소한 행복들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행복은 무지개 너머가 아니라 작은 것들 안에 선물처럼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녹음이 짙어가는 유월, 바람난장에서 사랑과 위로를 선물로 받았다.

<글=강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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