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사이로 저마다 푸른 우산을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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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산수국이 피는 유월(下)

야외 무대 올라 자연을 만끽
지나던 사람들도 시와 음악에
관객이 돼 위로와 휴식 얻어
지난 10일 제주시 애월읍 궷물오름에서 바람난장이 펼쳐졌다. 고은 作. 2023 산수국.
지난 10일 제주시 애월읍 궷물오름에서 바람난장이 펼쳐졌다. 고은 作. 2023 산수국.

궷물오름 탐방길을 걷는다. 까치발을 하고 나무 열매를 따 먹는 중년 여성을 보았다. 그녀는 야생 뽕나무 가지에 달린 열매를 먹으며 달다고 감탄한다. 나도 그녀 곁에서 까만 열매 두 알을 따서 입에 넣었다. 야생이라 그런지 열매가 너무나 쪼그맣다. 하지만 그 조그만 열매에서도 단맛이 난다. 신기한 일이다. 자연 속에 있는 동안 우리는 너나없이 순수하고 편안해진다. 번잡하던 마음에 바람 한 자락이 머물다 간다. 

야외에서 열리는 바람난장은 자연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예술이 흐르는 길, 바람난장이 궷물오름에서 열 번째 난장을 펼친다. 산수국이 만개하기엔 아직 이른 모양이다. 수놓은 듯 파란 꽃이 나무 그늘에 드문드문 피어 있다.

김정희 대표와 시놀이팀.
김정희 대표와 시놀이팀.

사회를 맡은 이혜정 님이 행사 시작을 알렸다. 파란 하늘빛이거나 바다의 쪽빛을 닮은 파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마치 숲속의 요정 같다. 김정희와 시놀이팀도 파란 원피스를 입고 조선희의 ‘수국꽃 편지’를 낭송한다. 

미뤄두었던 편지를 쓴다는 건
달뜨는 심장 소리를
오랜만에 듣는 일이다
장마철이면 저마다
작은 우산을 펼쳐드는 수국꽃
전서체로 안부를 묻는다
물빛 젖어든 푸른 꽃잎 사이
그립다 그립다는 말
물방울마다 조심스레 담아
왼손 맥박을 짚어가며
소식 전한다

‘작은 우산을 펼쳐드는 수국꽃’ ‘물빛 젖어든 푸른 꽃잎 사이/그립다 그립다는 말//’ 조선희 시인은 달뜨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편지를 쓴다. 길가에 화사하게 피어난 수국꽃을 떠올리며 시인의 시심을 더듬는다. ‘왼손 맥박을 짚어가며’ 전하고 싶은 그녀의 그리움은 어디쯤 가닿았을까 궁금해진다. 

다음은 서란영 팬플루트 연주가의 연주 순서다. 곡에 맞게 처음 갖고 왔다며 베이스 팬플루트를 꺼낸다. ‘The Last Of The Mohicans’가 숲속에 울려 퍼진다. 영화 「라스트 모히칸」의 주제곡이다. “살아만 있어요. 어디든 찾아갈 테니….”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피어난 사랑은 너무나 애절하고 안타깝고 비장함마저 든다. 음악은 웅장하면서도 슬픔에 젖게 한다. 베이스 팬플루트의 깊은 울림이 비장하고 웅장한 곡에 어울린다. 팬플루트 소리는 맑고 청아하여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그리움에 빠져들게 한다. 

이어서 황재성 님이 색소폰으로 ‘슬픈 인연’이라는 곡을 연주한다. 조금은 긴장된 듯한 표정이다. 발로 박자를 맞춘다. 슬픈 인연은 깊은 그리움을 만든다. 색소폰의 선율에 진솔하고 순수한 열정이 전해진다. 선율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연서 같다. 아쉬운 이별이 떠오른다. 수많은 망설임과 한숨, 눈물과 후회가 섞인 마음이 밤하늘 별빛처럼 아련하다. 

김정희 대표의 즉석 시낭송.
김정희 대표의 즉석 시낭송.

김정희 대표의 즉석시가 이어진다

낮이어도 
산도채비고장 푸른빛
그늘속에 숨어 있다

푸른빛 그녀들이
비를 몸에 두른 그녀들이 
뚝뚝 
푸른색을 짜내어 
나비를 만들어내어 날린다

그늘이 숲터널을 만들고 
부채로 만든 바람에도 산수국 흔들린다

-김정희 시인  즉석시 ‘산수국’

 

오름을 오르던 사람들이 나무 정자 그늘에 앉아 관객이 됐다. 그들은 시를 듣고 연주를 보고 박수를 보낸다. 그들과 어떤 인연으로 오늘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색소폰 연주가 숲속 연주회장에 울려 퍼지는 데 나비도 새도 잠시 날개를 접고 난장 곁에 머물렀다.

관객들이 함께 시낭송을 하고 있다.
관객들이 함께 시낭송을 하고 있다.

관객과 함께 손영희 시인의 ‘탐라산수국’을 낭송한다. 
네 거처를 찾아가는 나는 파랑나비/무심을 되새김하는 손잔등에 얹힌 나비/안개는 분화구에서 전설처럼 피어오르고/네 들숨 내 날숨으로 하늘 그물 엮어서/목동아, 우리 지극한 사랑이 될 양이면/저기 저 쏟아 놓은 별 지금 막 승천 중이니/-손영희, ‘탐라산수국’ 전문 

오름으로 가는 길은 곧은 길이 아니다. 좁은 길과 에움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도 쭉 뻗은 길 보다는 갓길과 에움길이 많다. 하지만 그 길에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예술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어 유월 어느 날이 탐라산수국의 푸른 꽃잎으로 기억된다. 

오늘의 퍼포먼스는 ‘파랑나비’이다. 퍼포먼스 팀이 산수국 꽃잎을 닮은 파란 의상과 파란 천으로 커다란 파란 나비를 연출했다. 파랑 나비의 날갯짓으로 보였던 것일까. 흰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 풀잎에 날개를 접고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그 많던 나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공연하는 사람이나 관객이나 시와 음악과 춤을 통해 잠시라도 깊은 위로와 휴식을 얻는다. 서로의 노력이 모여 바람난장이 오늘도 예술이 흐르는 길을 열어가고 있다. 

 

글=강순지

※다음 바람난장은 6월 24일 오전 11시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적거지에서 펼쳐집니다.

▲사회=이혜정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이정아, 이혜정, 장순자) ▲음악=서란영, 황재성 ▲그림=고은 ▲사진=홍예 ▲음향=장병일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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