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움이 밀려와도 해녀는 울지 않는다
서러움이 밀려와도 해녀는 울지 않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12) 바람의 섬, 우도를 가다 上

날씨 탓에 우도면사무소로…무위의 동작, 평복의 춤으로 이끌어
해녀든 아니든 고단한 삶의 질곡 건넜을 터…우도는 해녀 한 서린 곳
우도면사무소 대강당에서 공연을 펼친 바람난장과 우도 관계자들의 기념 촬영 장면.

이른 새벽, 장맛비가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 성산여객터미널에 다다를 즈음 비가 잦아들었다. 모두 제시간에 도착하여 예정대로 우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무용팀은 의상을 날씨에 맞춘 듯하다. 날씨를 탓하지 않고 여건에 맞게 무대를 꾸미고자 하는 노력이 읽힌다. 머리를 곱게 묶어 내린 고운 목선만으로도 공연의 절반은 보장된 것 같다.

당초에 계획한 공연장은 우도해수욕장이었다.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까지 함께 바람난장에 초대하고자 했는데, 날씨 때문에 급히 우도면사무소 대강당으로 장소를 변경하였다.

김철수 우도면주민자치위원장의 우도면민 소개.

우도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김철수 우도면 주민자치위원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해주셨다. 김재종 우도면장님을 비롯하여 강영수 시인님, 각 마을 이장님, 잠수회장님 등 다수의 우도 관계자와 주민들이 자리해주셨다.

공연이 무대 위에 오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는데 마음이 바쁜 탓일까. 식전 행사라도 해달라는 주문에 눈치 빠른 팬플루트 연주가 서란영 님께서 선뜻 나선다. 벙거지에 청바지 차림으로 즉석에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연주한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관객의 요청에 화답하는 것을 보며, 사람 마음을 헤아리는 예술가가 최고다, 라고 새삼 깨닫게 된다. 무언(無言)으로 가르치는 선생이 또 한 사람 늘었다. 언제 어디서든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이 더없이 부러운 날이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음악 이름 없는 바람이 흐르는가 싶더니 제주연무용단이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손에 들린 커다란 꽃무늬 모자로 얼굴을 온통 가렸다. 우도를 형상화한 춤이라는데 이름 없는 바람을 연출한 것인가. 이름 없는 섬 무명도(無名島), 이름 없는 해녀, 이름 없는 시 따위의 셀 수 없는 무위(無爲)의 동작을 평복의 춤으로 이끌어간다.

우도를 형상화한 춤을 선보이는 제주연무용단.

꽃무늬에 가려진 얼굴 없는 춤사위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마침내 다다르는 곳, 어디쯤일까. 무표정으로 가려진 느낌 하나하나를 탐색해본다. 다들 연배가 있어 보이는 게, 삶의 부침(浮沈) 또한 깊을 것이다.

누군들 내려놓고 싶은 짐이 없을까. 기쁨이나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잠시일 것이고 슬픔의 심연 하나쯤은 각자 지니고 있을 것이다. 짊어져야 할 내일의 짐은 유추할 수 없기에 오늘까지의 짐일랑 다 내려놓아야지.

우도해녀의 여름 성게 채취 물질 모습.

복도 곳곳에 우도 관련 사진들이 걸려 있다. 테왁을 따돌린 채 바다 깊은 곳에 잠수한 해녀는 금방이라도 호오이, 호오이가쁜 숨을 몰아쉬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것 같다. 시퍼런 바다를 한평생 머리에 이고 살았을 타성을 깨트리고 사진 밖으로 걸어 나와 함께 공연을 즐겼으면 좋으련만.

밤하늘 별처럼 헤아릴 수 없는 수만 해녀의 자맥질이 바람난장의 춤사위가 되어 파도에 안긴다. 잠시 적요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정아 시 낭송가가 무대 앞으로 나서며 흩어진 시선을 하나로 모은다.

마이크를 입술 가까이에 대고 비장한 목소리로 해녀는 울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제 살 도려내듯 아프게 내지른다. 우도 시인 강영수 님의 시다. 살을 가르는 날카로운 전율에 휘청댔다. 순간 앞자리에 앉아 있는 김양순 잠수회장님의 표정을 훑었다. 우도 해녀 322명을 대표하는 분이어서인가. 회장님께서도 흠칫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세를 바로잡는다. 깊은 내공이 엿보인다.

 

목숨 걸고

짙푸른 바다에 뛰어들 땐

아픔도 서러움도 눈물도

바닷물에 씻는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바닷물 속

살 팔자면 살 것이고

죽을 운명이면 죽을 것이니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해녀

 

가난해서 울고 싶었다

배고파서 울고 싶었다

시린 손발 울고 싶었다

해녀여서 울고 싶었다

 

해녀로 살 줄 누가 알았으랴

배부르면 울어도

배고프면 울지 않는

물속 인생

해녀

 

마지막 구절을 낭송할 때, 잠수회장님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촉촉이 젖어 든 사람이 잠수회장님만은 아니었다. 해녀든지, 해녀가 아니든지 고단한 삶의 질곡을 건넜을 터다. 섬 속의 섬, 우도는 어쩌면 해녀의 한이 가장 깊게 서린 곳 아닌가.

심연에서 시 한 구절 퍼 올리는 숨 가쁜 해녀의 벌건 숨비소리가 칠성판 위를 낭자하게 물들인다.

=오민숙 세화중학교 교감·수필가

 

사회=김정희 시낭송=이정아 장순자 김정희 무용=박연술제주연무용단 연주=서란영 강용희 노래=이성진 사진=허영숙 음향감독=장병일 총감독=김정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