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 벗 삼아 가만히 선 목마등대 예술의 물결 출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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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날것이 전하는 메시지 무대에 올리다(上)

‘백개, 가몰개’로 기록된 이호마을...4개 자연마을 해안 에돌며 형성돼

청아한 목소리로 읊는 시낭송과 넋 놓고 듣게 되는 ‘오 솔레 미오’

따라 부르던 행인이 관객이 되고 관객은 다시 공연자로 하나가 되다
바람난장이 열린 제주시 이호테우해변 하얀 목마등대.
바람난장이 열린 제주시 이호테우해변 하얀 목마등대.

제주시에서 가장 가까운 테우해변이 있는 곳. 온통 파아란 하늘 위로 둥실 띄워 놓은 구름이 벗들을 불러 계절의 한낮을 그렇게 만끽하고 있었다. 그곳을 가로질러 바다를 배경으로 높게 서 있는 이호동 목마등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시어 몇 개가 가슴을 파고들 것 같고, 등대지기라는 노랫가락이 입 안에서 슬며시 흘러나올 듯한 풍경이다. 예술이라는 단어가 물살에 술술 풀리며 물길 따라 흐를 것 같은 곳에서 바람난장은 막을 올렸다. 

이호마을은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 ‘백개, 가몰개’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4개의 자연마을이 해안을 에돌며 형성되어 있고, 민속유적으로 본향당과 이호동 남당이라 부르는 포제단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곳이다. 거기에서 바람난장은 또 하나의 예술이라는 이름에 열정을 덧칠해 놓았다. 절기가 뒤물러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낮의 햇살은 정수리 위로 내리꽂히듯 따가웠다.

햇살을 토해내는 하늘에 바다는 화답이라도 하는 듯 물결마다 윤슬을 온통 뿌려놓았다. 그 위로 청아한 목소리 이정아님이 사회로 ‘예술이 흐르는 길 바람난장’이라는 멘트로 그 길을 연다. 저 목소리! 언제 들어도 가슴이 젖어 드는 음색이다. 잠시 후 김정희 대표께서 햇살이 따가워도 바람이 순해진 것을 보니 가을의 초입인 것 같다며 이호 목마 등대에 왔으니 김수열님의 ‘등대’라는 시를 낭송하겠다며 특유의 목소리로 선보였다. 

 ‘…/등대의 눈을 가져본 사람은 닳고 닳은 비석처럼 서 있는/저 등대의 마음을 절절하게 알고 있으니/ 귀가 멀수록 사랑은 가까워지고/눈이 어두울수록 마음은 환하게 밝아진다는 것을/그리고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생각은 점점 더 깊어진다는 것을/그래서 등대는 언젠가 소복이 눈 덮인 물살 위로 삐걱거리며/돌아올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늙은 옛사랑을 위해 이 밤도/졸음에 겨워 가물거리는 눈을 비비고 비비며/기다림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나의 늙은 옛사랑도 이렇게 눈으로도, 귀로도 오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올 때까지 시간을 숙성시켜 기다려야 온전히 얻을 수 있었다는 말이었던가 하고 되새김질해 보았다. 잠시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두런두런 공연하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성악가이신 이마리아님의 이태리 가곡인 ‘오 솔레 미오(O sole mio)’와 송창식님의 ‘우리는’을 불러 주셨다. 저 나이에 저렇게 고음과 풍부한 성량의 목소리를 어떻게 낼까 하고 노래에 젬병인 나로서는 여간 부러운 게 아니다. 부러운 시선을 이 마리아 님을 향해 계속 쏘아대었는데 그런 마음을 알기나 할까. 한참을 넋 놓고 들었다. 아주 오래전 TV에서 방영해 주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공연 ‘오 솔레 미오’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곡이 1900년 이전에 작곡된 것이라는데 지금까지도 아낌을 받는 것을 보며 명곡은 이래서 명곡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관광객들이 공연을 한참 동안 듣다가 이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우연히 마주친 눈빛에 엄지척 한다. 이어지는 ‘우리는’을 들으며 우리는 ‘우리는’을 따라 부르는데 어느새 합창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찾을 수 있는/우리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느낄 수 있는 우리는/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이어지는 가사에 맞추어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아주 작은 몸짓 하나로도,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는 관계. 오래 들어 좋고, 편안해서 좋은 노래다. 길을 걷다 따라 부르던 행인도 관객이 되고, 관객이 행인이 되는가 싶더니, 행인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공연자. 우리는 하나였다.

이어지는 공연은 단아하게 차려입은 이혜정님이 시 낭송 무대다. 구좌문학회에 소속된 조선희님의 시가 낭송되었다.


그래도 그립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산다는 건
바다를 닮아가는 일이었네
파도를 껴안아야 사는 일이었네

불면은
당신, 아니면
나로부터 시작되었네

보·고·싶·다
바람에 절여진 토막말
문장을 낮게 진설해 놓으면
저녁이 느리게 찾아오는

이 섬에서는
당신을 떠나보내는 일
차마 못 하겠네


아프다 읽는 것만으로도. 저 시인은 얼마나 깊고, 긴 아픔의 흔적을 다독이느라 저렇게 토설해 놓고 있는 걸까. 바람의 모서리에서도, 어쩌면 조각난 햇살 언저리에서도 저 시인은 문득 그리움이라 팽팽하게 당겨진 단어를 앞에 놓고 ‘이 섬에서는 당신을 떠나보내는 일 차마 못 하겠네’라는 말로 아파하며 스스로 달게 받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이애현

▲사회=이정아 ▲시낭송=이혜정·장순자·김정희 ▲노래=윤경희·이마리아 ▲색소폰=강섭근 ▲팬플릇연주=서란영 ▲사진=홍예 ▲영상=김종석 ▲음향감독=장병일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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