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일렁이는 잔물결…날것이 주는 생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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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날것이 전하는 메시지 무대에 올리다(下)


계절의 막바지 햇살은 세를 넓히고
무대는 사뭇 진지, 에너지는 출렁
팬플루트·색소폰 연주와 노래
출연자와 관객들의 웃음 가득
각자의 음색을 담은 시 낭송
가슴으로 전해지는 의미는 달라
홍진숙 作 ‘이호등대’(종이에 수채).
홍진숙 作 ‘이호등대’(종이에 수채).

계절의 막바지에 서 있어서일까. 햇살은 발악이라도 하듯 그 세를 넓히고 있다. 소품처럼 태양 빛을 차단하느라 양산을 쥔 손에도 무게가 실렸다. 빗겨 서면 따갑다. 그래도 무대에 설 때는 사뭇 진지하고 준비한 작품들을 발표하느라 모두가 발산하는 에너지로 출렁거리고 있다. 팬플루트 연주가이신 서란영님이 아랍 전통의상처럼 된 옷을 입고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파란 하늘과 빨간색 목마 등대며 쪽빛 바다 위에 가득 펼쳐진 윤슬이 신비감을 더했다. 게다가 서란영님 의상이 이것들과 어우러지며 흔치 않은 색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준비한 연주곡은 우리 귀에 익숙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었다. 이 곡은 나부코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무너지면서 히브리인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오게 된다. 히브리인들이 유프라테스 강가에 앉아 고국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가 그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식민지였던 터라, 이 노래를 통하여 자신들의 암울한 현실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난 속에서도 기회가 온다’라는 뜻을 가진 이 곡은 이탈리아에서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는 설명이 있다. 연주하는 동안 손놀림이며 선율 따라 몸놀림이 사뭇 진지했다. 악기 소리에 오가는 행인들 발길을 온통 유혹하고 있다. 들어오면서 본 구름도 끼리끼리 나직이 키를 낮추고 있다. 이들의 발길도 팬플르트 고운 음이 당겼음일까.

김정희와 시놀이 시낭송.
김정희와 시놀이 시낭송.

다음 순서로 수필가 김백윤님의 작품인 ‘바다의 변주곡’ 낭송 시간이다. 시 낭송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아님, 이혜정님, 장순자님, 그리고 김정희 대표가 순서대로 낭송하게 되었다.

 ‘… 전략. 남은 생에 또 다른 파도가 밀려와도 차분하게 맞서고 싶다. 파도에 온몸을 내어주지만, 바위는 쓰러지지 않는다. 포효가 끝나고 잔잔해진 뒤 바다를 오히려 아름답게 하는 건 바위다. 사람도 시련 앞에 비틀거리지만 꿋꿋하게 견뎌내고 나면 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맑은 날 더욱더 또렷하게 바다를 빛내는 바위의 뚝심과 너볏함, 그래서 상처 많은 바위는 눈물 빛으로 빛난다, 잔잔해진 바다와 바위틈으로 신선한 바람이 분다, 햇살은 물방울과의 유희를 즐기고 바위의 속살까지 파고든다, 파도가 할퀴고 간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지 햇볕이 순하게 물들어간다, 파도와 바위가 만들어가는 상생, 공존의 하모니가 바다를 가득 채운다.’ 
작가의 힘들었던 삶의 여정과 자연과 비유하면서 상생하고자 하는 결연함이 바다와 바위 위로 채색되고 있다.

멋쟁이 강섭근님의 색소폰으로 ‘우연히’와 ‘해변의 여인’ 연주가 시작되었다. 다른 악기도 그렇긴 하겠지만 남성들의 색소폰 연주는 늘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아랍 의상처럼 연출한 서란영 님, 시인 김도경 님, 대표 김정희 님은 파라솔을 들고 해변에 서 있던 여인들은 ‘해변의 여인’처럼 노래하는 동안 일없이 왔다 갔다하며 해변을 거니느라 다른 출연자와 관객들의 웃음을 쏟게 했다. 물론 그 공연을 지켜 보던 관객도 데리고 온 아이와 무대를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도는 것으로 동참했다.

등대 앞에서 등대가 빠질 수 없었다. 장순자 님께서 시인 이윤승님의 ‘등대 1,2’가 낭송되었다.


등대 2

나는 늘 여기 있을 것이오
당신이 있어 나는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이오
당신 가시는 길 사목사목 바라보며
수평선 너머의 너머를 생각하오


이어지는 순서로 윤경희님께서 ‘등대지기’를 불러 주셨다. 너무 익숙해 좋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등대 노래를. 시작은 윤경희님이 하셨는데 나중에는 같이 합창으로 부르고 있었다. 모름지기 좋은 것은 언제든 꺼낼 수 있게 모든 이의 마음으로 저장되는가 보다. 

제주시 이호테우해변 목마등대에서 바람난장을 마친 이후 가진 단체 기념사진.
제주시 이호테우해변 목마등대에서 바람난장을 마친 이후 가진 단체 기념사진.

마지막까지 흥에 겨워 열심히 지켜보던 관객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기 전에 바람난장 팀 전원이 돌아가면서 시 한 구절씩 읊는 대목이 있었다. 각자의 음색을 담아 낭송하는 것을 보며 같은 구절인데도 가슴으로 전해지는 의미는 사뭇 달랐다. 평범한가 하면, 의미심장하고, 그런가 하면 여리여리한 게 애잔하고, 또 기다림을 꾹꾹 눌러 담은 듯 애절하여 목소리마다 들리는 색깔이 달랐다. 그것은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잔물결 하나하나의 물비늘처럼 날 것이 주는 생동감 그 자체였다. 바다와 하늘이 온통 푸른색으로 흥건하게 젖은 모습을 뒤로 하고 나오는데 눈길이 그 풍경을 놓지 못한 미련으로 가득하다. 글=이애현

▲사회=이정아 ▲시낭송=이혜정·장순자·김정희 ▲노래=윤경희·이마리아 ▲색소폰=강섭근 ▲팬플루트=서란영 ▲사진=홍예 ▲영상=김종석 ▲음향감독=장병일 ▲총감독=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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