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제주해녀문화, 사진으로 전 세계에 알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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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人 아카데미] ②양종훈 ㈔제주해녀문화예술연구협회 이사장

“다큐 사진은 사람들에 이익 되돌려주는 데 본질 있어”
1999년 서울대병원과 협의해 소아암 환자 사진전도…

지난 13일 제주웰컴센터에서 제주일보 주최로 열린 ‘제주人 아카데미’ 두 번째 강좌 강사로 나선 양종훈 작가는 사라져 가는 해녀문화를 지키기 위해 사진을 통해 그들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일을 자신이 가장,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서 확고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양종훈 作 말 탄 해녀.
양종훈 作 말 탄 해녀.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게
양종훈 작가는 해녀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을 단순하게, 복합하지 않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양 작가의 해녀 사진들도 대부분 하늘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해녀 사진을 흑백으로 설정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해녀의 위대함을 ‘네모난 틀’ 하나로 표현해야 하는데, 사진을 주로 크게 쓰는 데다, 컬러일 경우 보는 이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2년 전 해녀가 하늘을 배경으로 말을 탄 모습을 촬영한 ‘말 탄 해녀’ 작품을 소개했다.

양 작가는 “마사회에서 스폰을 받았는데, 마사회 직원인 후배가 말 사진을 갖고 있는 게 없냐고 해서 해녀 분을 태워 급히 찍은 사진”이라며 “이 작품을 공항에 전시했었는데 당시 히트를 쳤지만, 안티가 엄청났다”고 회상했다.

이어 “말은 흔히 쾌락을 느끼기 위해 타는데, 목숨을 걸고 일하는 해녀가 타서 그랬던 것으로 안다. 해녀 사진 찍는 사람이 이런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라며 “옹호한 사람도 있었다. 그때 나훈아의 안티가 많은 곡들이 모두 히트를 친 게 생각났다. 예술작품에서 안티가 없다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다. 내게는 너무 고마운 사진”이라고 말했다.

심방이 해녀 굿을 하고 있는 모습의 작품. 양종훈 작가는 카메라 셔터 스피드를 길게 가져가 심방이 영혼이 돼 사진 속으로 쏙 들어간 것처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심방이 해녀 굿을 하고 있는 모습의 작품. 양종훈 작가는 카메라 셔터 스피드를 길게 가져가 심방이 영혼이 돼 사진 속으로 쏙 들어간 것처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해녀와 심방은 뗄 수 없는 가족
양 작가는 이 둘을 부부라고 표현했다. 해녀들은 트라우마가 많은데, 심방이 해녀 굿으로 믿음과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정신적 교감인 셈이다.

그가 심방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 작가는 해녀를 촬영하며 자연스레 해녀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굿 의례와 심방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개인전을 통해 카메라에 담아 온 해녀 사진 작업 중 처음으로 심방을 연결 지었다.

양 작가는 “심방은 해녀에게 자신의 영향을 많이 주려고 한다. 해녀와 심방의 팔자가 다르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둘 다 엄청 센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사진 속 심방을 남성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해녀 사진에 나타나는 기가 여자 해녀와 여자 심방일 때는 상극이어서 장면이 잘 나오지 않았다”며 “해녀와 심방 사이에서도 동양 사상인 음양의 조화가 분명히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양 작가는 해녀와 심방을 비빔밥처럼 밥상에 같이 올려 늘 함께 생각하고, 이들의 기록을 담는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종훈 작가가 촬영한 해녀 사진.
양종훈 작가가 촬영한 해녀 사진.

▲사라져 가는 해녀문화
“해녀는 등에 관을 지고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물 밑으로 내려가서는 전복을 잡아도 올라올 때는 잡지 말아야 하는데, 포기하지 못하고 잡다가 돌아가시는 분이 많다. 슬프고 안타깝다.”

양 작가는 해녀가 제주 공동체의 스타트 라인이라고 말했다. 함께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누구 1명이 아프면 수확한 수산물을 나눠주고 그랬다고 했다. 

한때 2만~3만 명이던 제주해녀는 현재 3000명 초반대로 줄었다. 70세 넘는 해녀가 65%에 달해 고령화도 심각한 상황이다.

매년 신규 해녀 30명 안팎이 등록되고 있지만,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은퇴를 하거나, 세상을 떠나고 있고, 노동력에 비해 소득이 적을뿐 아니라 신규 진입도 쉽지 않아 현직 해녀 감소가 이어지며 위기를 맞고 있다.

양 작가는 “해녀 수가 많아 집단으로 다닐 때는 물질하다 돌아가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며 “지금은 해녀 수가 적어 서로 물질하는 곳이 멀다 보니 도움이 필요해 소리쳐도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사람이 많으면 살릴 수 있는데…”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양종훈 작가가 촬영한 해녀 사진
양종훈 작가가 촬영한 해녀 사진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다
2000년대 이전에는 소아암 환자에 대한 국가 지원이 없었다. 자녀가 소아암에 걸린 집안은 재산이 금세 탕진되기 일쑤였다.

양 작가는 소아암 환자는 국가가 지원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9년 서울대학교병원과 협의해 소아암 수술 장면을 촬영하고, 사진전을 열어 이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 국회에서 소아암 환자 지원 법안이 발의됐고, 2000년부터 소아암 환자에게 국비가 지원되고 있다.

양 작가는 다큐멘터리사진은 찍고, 전시하고,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닌, 그 사람들에게 이익을 되돌려주는 데 본질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해녀의 위대함을 사진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널리 알리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일본 오사카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이 끝나면 내년 봄에 미국 워싱턴으로 넘어가 전시회를 열어 제주해녀를 알릴 계획이다. 

해녀 굿즈 상품도 만들어 수입 전액을 제주해녀를 위해 쓰기로 했다. 

양 작가는 “예전에는 우리 가족이 해녀라고 말한 사람이 없었지만, 2016년 유네스코 등재 이후 많이 바뀌었다. 우리 할머니도 해녀였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며 “내가 가야 할 길은 제주해녀의 위대함을 알리는 것이다. 세계 방방곡곡에 해녀를 알리겠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양종훈 작가가 특강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봉수 기자
양종훈 작가가 특강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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