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어둠 밝히고 아픔 보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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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정현문학회와 바람난장의 콜라보 가을 하늘 고추잠자리 날다 (上)

‘전설1’·‘송악산’·‘하늘이 열리는’
시낭송과 팬플루트 연주…

알뜨르 평화 현장 시화전도
함께 열려 4·3희생자 위로
지난 14일 오전 10시 제1회 알뜨르 평화 현장 시화전이 열린 서귀포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앞.
지난 14일 오전 10시 제1회 알뜨르 평화 현장 시화전이 열린 서귀포 대정읍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앞.

모슬포항을 지나 알뜨르비행장까지 가는 길은 푸르렀다. 짙푸른 바다와 꽃 피기 시작하는 감자밭 그리고 가을 하늘, 저 멀리 이정표처럼 자리한 산방산을 눈에 넣으며 길을 재촉했다. 

알뜨르비행장은 4·3의 거대한 아픔을 품은 현장이다. 1943년 일제가 만들었던 20기의 격납고, 현재 19기가 원형대로 남아있으며, 이 중 10기를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관리하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일제는 주민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 시켰다. 여섯 개 마을을 희생시키며 마을과 농경지를 몰수했다. 일본군의 만행을 송악산, 산방산, 섯알오름의 백조일손지묘의 영혼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바람난장 김정희 대표가 시를 낭송하고 있다.
바람난장 김정희 대표가 시를 낭송하고 있다.

2023년 10월 14일 오전 10시, 제1회 알뜨르 평화 현장 시화전 개막을 알렸다. 바람난장 김정희 대표는 여는 시로 대정현문학회 회원 김철선 시인의 전설(傳說)1를 낭송했다. 

김철선의 시, ‘전설(傳說)1’

전쟁 나던 해
칠월칠석, 칠흑 같은 밤
예비검속에 어디론가
끌려가는
누군가의 아버지와 아들들
마지막 삶의 순간을 느끼면서
“손 모아 불효자
이 길로 먼 곳 갑니다.”
행여, 부모님
날 찾아 얼마나 헤매실까
죽음 향해 내달리는 트럭 위에서
이정표처럼 길가로 던지던
검정고무신
이승의 경계 섯알오름
이윽고 바람 난장이 불고
한바탕 콩 볶는 소리
바람에 오는 말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어데서 찾을 손가
그때 그 속절없이 쓰러진
이백여 슬픈 영혼
백조일손묘역에서 찾아볼까나

시를 읊조려본다. 칠흑의 어둠에 갇힌 듯하다. 전쟁 나던 해 칠월칠석은 은하수도 무서워 숨어버렸나 보다. 예비검속에 체포되어 트럭을 타고 끌려가는 사람들의 다급했을 공포가 엄습한다. 징표로 길을 내던 검정 고무신, 아버지와 아들을 찾아 나섰던 아버지와 아들들의 한이 상장(喪章)으로 핀 감자밭, 알뜨르비행장 주변에 감자밭이 많은 이유가 아닐까 이입해 본다. 

6·25 당시, 섯알오름에서 한 몸이 된 132명의 희생자가 있었다. 예비검속에 적발되어 학살당했던 전체 희생자 규모를 헤아릴 수 없지만, 7년 후 유족들은 132명의 유해만 수습할 수 있었다. ‘백서른두 명의 할아버지 자식들이 한날한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되었으니 한 자손’이라는 뜻의 백조일손지묘, 아픔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전설(傳說)을 전설(傳說)하며 기억해야 할 이유가 선명하다. 

대정현문학회 김춘기 회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대정현문학회 김춘기 회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대정현문학회 김춘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제1회 알뜨르 평화 현장 시화전을 찾아 준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대정현문학회 작가들이 아픈 역사와 당시 희생된 핏줄들을 생각하며 쓴 작품이 바람난장 회원들의 시낭송, 노래와 연주로 함께 어우러질 수 있어 반갑다며, 이 자리가 제주의 지나간 어둠을 밝히고 아픔을 보듬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바람난장 김정희 대표는 ‘제주에서 꼭 가 봐야 할 곳, 곳곳을 찾아다니며 7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라며 제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제주의 진정한 속살을 알리고 소통하는 예술의 장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창선 시인의 <송악산> 시낭송에 이어 팬플루트 연주가 서란영씨의 연주가 햇살 가득한 들판으로 울려 퍼졌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를 듣는 동안 고추잠자리들이 백조일손지묘의 영혼들을 위로하듯 춤사위가 자유롭고 현란했다. 대정현문학회 초대회장 강창유 시인이 <하늘이 열리는> 시낭송하는 동안에도 고추잠자리들의 날갯짓은 계속되었다. 

격납고 안에 굵은 철사로 만들어진 녹슨 비행기 모형과 시화, 그 사이를 누비는 고추잠자리들의 비행을 보며 묘한 감정에 젖어 들었다. 동참한 모든 분이 느꼈을 마음 언저리의 숙연함을 대변하듯, 바람난장 김정희 대표가 즉흥시를 지어 낭송했다. 4·3 아픔의 역사 현장에서 예술인들은 평화와 화합의 염원을 담아 시화전과 공연을 펼쳤다. 격납고 앞 밭에는 콩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글=김도경
▲사회=김정희 ▲대정현문학회 참여작가=강애심, 강창유, 김양실, 김영옥, 김철선, 김춘기, 문경선, 문순자, 양순진, 오영석, 이창선, 허경종, 현경희 ▲바람난장 참여작가=김애현, 조선희, 김도경 ▲대정현문학회 시낭송=이창선, 강창유, 문경선 ▲바람난장 시낭송=김정희,이정아, ▲노래=성악가 이마리아 ▲색소폰=황재성 ▲팬플루트=서란영 ▲사진=홍예 ▲음향영상=장병일 ▲그림=유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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