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아래 부는 평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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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대정현문학회와 바람난장의 콜라보 “예술혼으로 백조일손지묘에 넋 드리다”
제1회 알뜨르 평화 현장 시화전 (下)

감자밭·콩밭에 무르익는 가을,
아픔의 땅에 수확철 찾아오고…

제주 다크투어리즘 성지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영혼들 위로
유창훈 作 ‘초원 위에 부는 바람’. 서귀포시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앞에서 관객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는 모습을 장지에 먹과 색을 사용해 작업했다.
유창훈 作 ‘초원 위에 부는 바람’. 서귀포시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앞에서 관객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는 모습을 장지에 먹과 색을 사용해 작업했다.

원형대로 남아있는 19기 격납고들 주변은 감자밭과 콩밭이 주를 이루었다.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제주의 척박한 땅을 보여주는 밭 풍경이었다. 섯알오름을 뒤로한 비탈진 밭에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있었다. 감자밭의 초록빛과 콩밭의 노란빛은 들에 색을 풀놓은 듯, 카메라 앵글에 잡힌 구도가 완연한 가을 색이었다. 김마리아 성악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곡 <메모리>, 두 번째 곡 <신아리랑>를 연이어 열창했다. 고즈넉한 들녘과 숨소리마저 조심하는 관객, 외부 공연장의 이색적인 분위기와 가창에 환호를 보냈다. 이정아 시낭송가는 김양실 시인의 <뱃길 위에서>를 낭송했고, 대정현문학 회원 문경선 시인이 자작시 <내 고향 알뜨르>를 낭송했다. 

‘내 고향 알뜨르’의 문경선 시인.
‘내 고향 알뜨르’의 문경선 시인.

문경선 시인의 시

내 고향 알뜨르
 
초원의 빛들이 바다로 향하는 곳
섬인 듯 무덤인 듯 격납고들 징검다리 건넌다
들판의 비밀을 껴안은 격납고
곡괭이 쇠 울음 견고하게 갇혀있어
아버지 청춘 앞에 송악산 바다 앞에
잔잔한 날에도 일파만파 바람이 일어나
핏빛 소식 흩날린다
흩날린다 핏빛 소식
무심히 세월가도 각인된 슬픔 남아
종을 치면 와르르 울분이 쏟아질 것 같은 봄날
넋들임하는 종달새
하늘을 오르내리며 삐그르르 삐르르


문경선 시인은 낭송에 앞서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4·3은 아픔이다. 아버지가 산증인이었고 아버지가 들려주는 4·3을 직시했을 시인의 통찰이 한 편의 시로 승화되었다. 압축해 놓은 비극의 역사 속에서 하늘을 나는 종달새가 넋 들이는 들판을 연상해 본다. 아픔은 봄날을 건너 여름 이겨내고 수확의 계절 가을을 맞았다. 


‘제1회 알뜨르 평화 현장 시화전’은 제주의 지나간 어둠을 밝히고 아픔을 보듬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알뜨르’는 아래쪽 벌판이라는 제주어이지만, 이곳 알뜨르비행장에서 ‘알뜨르’는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 4·3의 흔적이며 아픔이다. 아픔을 ‘평화’로 승화하자는 대정현문학회 회원들이 뜻을 모은 시에 바람난장의 예술가들이 혼을 불어넣는 공연으로 화합을 담아냈다. 

강창유 시인의 시

알뜨르 대평화 공원

나는 보았노라 일제 강점기 아카 돔보 비행기
미국 B29 폭격기 나는 들었노라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진지 동굴 만드는 소리
한 맺힌 그 세월
이제는 알뜨르에 들어선 대평화 공원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영원토록 삶 속에 
한 가닥 빛이 스며들길


대정현문학회 회원들의 시는 알뜨르 섯알오름 주차장 앞 격납고에 전시했다. 최순복 작가가 전시 공간연출을 맡았으며 서귀포시가 후원했다. 알뜨르비행장은 제주의 다크투어리즘의 성지이다. 활주로와 격납고가 집단으로 조성된 사이에 설치된 지하 벙커, 4·3의 잔혹한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 현장이다. 오늘도 직접 찾아와서 보고 듣고 느끼려는 방문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무고하게 희생됐던 영혼들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으로 넋을 위로하고 있었다. 노란빛의 콩밭과 어우러진 시화전, 오프닝 합동공연도 무르익어 절정에 다다랐다.

색소포니스트 황재성의 연주 모습.
색소포니스트 황재성의 연주 모습.

바람난장의 황재성 색소폰 연주자가 허영란의 <날개>를 연주했다. 마지막 순서로 강애심 시인의 시 <멈춰버린 흔적>을 관객이 함께 낭송했다. 단체 사진으로 남은 여운을 달래주는 홍예 사진작가와 음향영상 장병일 작가의 노고가 엿보였다. 가을 햇살 아래 어디선가 유창훈 화가의 손놀림도 분주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슬포 앞바다가 은빛 물결이었다. 백조일손지묘 영혼들이 비통했던 세월을 승화하듯, 눈부신 향연으로 존재를 알리는 작별 인사로 보였다. 바다에 물은 보이지 않고 반짝이는 은빛이 가득했다.        

관객들과 함께 강애심 시인의 시 ‘멈춰버린 흔적’을 낭송하는 모습.
관객들과 함께 강애심 시인의 시 ‘멈춰버린 흔적’을 낭송하는 모습.

글=김도경                           

▲사회=김정희 ▲대정현문학회 참여작가=강애심, 강창유, 김양실, 김영옥, 김철선, 김춘기, 문경선, 문순자, 양순진, 오영석, 이창선, 허경종, 현경희 ▲바람난장 참여작가=이애현, 조선희, 김도경 ▲대정현문학회 시낭송=이창선, 강창유, 문경선 ▲바람난장 시낭송=김정희,이정아, ▲노래=성악가 이마리아 ▲색소폰=황재성 ▲팬플루트=서란영 ▲사진=홍예 ▲음향영상=장병일 ▲그림=유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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